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1985년, 미국의 한 대학원에서 사회언어학을 연구하던 한국의 젊은 교수는 지도교수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며 학기말을 맞는다. 일본·대만·태국학생을 포함한 4인의 아시아그룹은 격주로 내는 십여차례의 그룹보고서도 제때에 꼬박꼬박 잘 냈는데 비해, 미국·유럽·남미계의 세 그룹은 보고서도 늦게 내고 녹음인터뷰를 하다가 주민들로부터 FBI로 의심을 받는가 하면 교수에게 질문도 많고 반론도 많았다. 그런데 담당교수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너희들 아시아그룹은 어찌 그리 착하고 얌전하기만 하냐? 너희는 항의 한 번도 안 하고 질문 한 번 없으니!" (한양대 홍연숙 교수). 30년 전의 일이니 그 동안 우리들의 '질문 없는 얌전함'은 좀 개선됐을까.

카이스트에서  해양시스템공학을 가르치는 전 노르웨이 공과대학 폴 베르간(Bergan) 교수는 2009년 9월, 처음 한국에서 수업을 하면서 당황했다고 한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듣기만 하고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궁금한 것 없느냐"고 유도했지만 1~2명 정도만 질문할 뿐이었다. 한국에서 강의를 하는 해외석학들에게 "한국학생들을 외국학생들과 비교하면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외국학생들이 질문을 더 많이 한다"는 응답이 78%(68명)인데 비해 "한국학생이 질문을 잘 한다"는 응답은 2.3%(2명)에 불과했다(2011년 12월12일. 조선일보 ).

대학생들만이 아니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역할을 해 주셨으니까요." 2010년 G20 정상회의 폐막식 기념회장,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잔뜩 기대를 걸고 질문을 유도했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누구 없나요?" 그래도 손을 드는 한국 기자는 없었다.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하지만 저는 중국기자입니다. 제가 아시아를 대표해서 질문해도 될까요?" 오바마 대통령은 실망감을 감추고 다시 말했다. "저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을 요청했습니다. 아무도 없나요?" 한국기자는 끝내 대답이 없었고 질문권은 결국 중국기자에게 넘어갔다.

기자들의 모습도 실망스럽지만, 텔레비전 뉴스로 보는 국무회의 모습은 정말 답답하게 느껴진다. 장관들은 대통령 앞에서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인가. 혹시 질문과 의견개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다 잘라버리고 대통령이 말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것인가. 지난달 12일 연두기자회견에서는 "장관들의 대면보고가 적다"는 질문을 받은 대통령이 장관들을 돌아보면서 "대면보고가 꼭 필요한가요?"라고 되물었고 배석해 있던 장관들이 보여준 것은 바람 빠진 헛웃음(?). 나라의 앞날이 정말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대면보고 기회를 통해서 장관에게 질문도 하고 의견도 나눠야 좀 더 나은 정책을 찾아낼 수 있을 게 아닌가.

 질문과 토론을 권장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국무회의도 그래야 하고, 기자들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도 추가질문이 있어야 심도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더욱 그렇다. 질문하고 토론함으로써 지식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서로 간에 쌓여 있는 오해도 풀 수 있다.

세계 인구의 0.24%, 1600만에 불과한 유대인이 따낸 노벨상은 30%에 달한다. 유대인 엄마들은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질문 잘 하라"고 말한다.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당부하는 우리 엄마들하고는 사뭇 다르다.

학교 수업현장에서 "질문할 사람 없나요?"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오고간다면 그 학교의 수업은 정말 활발해질 것이고 우리 학생들의 호기심과 창의성은 쑥쑥 자라날 것이다. 물론 질문과 대화,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려면 교육과정의 내용은 대폭 축소돼야 할 것이다.

질문과 의견개진에 이어 토론까지 활발하게 벌어지는 국무회의 모습을 본다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은 풀릴 것 같다. 좋은 질문을 주고받는 사회, 대화와 토론으로 활기 넘치는 그런 나라의 모습을 보고 싶다.
+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