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전환에 재건축 이주까지 겹쳐 연립·다세대도 품귀
강동구 4천600가구 동시 이주…재건축 이주시기조정 '유명무실'
서울 연립주택 전세 상승률 아파트 추월, 전세가율도 역대 최고

서울 강동구 고덕 주공2단지 59㎡에 거주하는 세입자 김모(39)씨는 최근 고덕동의 연립·다세대주택 시세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재건축 사업으로 다음 달부터 이주가 시작되는데 현재 보유한 전세보증금 1억2천만원으로는 인근 다세대 주택 전세도 얻기 힘든 것이다.
 
인근 다세대주택은 현재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작은 49㎡ 규모도 전세 시세가 1억3천만∼1억5천만원에 달한다. 김씨가 보유한 돈에서 최고 3천만원이 더 필요한 것이다.  
 
김씨는 "아파트도 아닌 다세대이고, 평수도 더 작은데 전세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상태"라며 "고덕동에서 전세를 얻지 못하면 별 수 없이 인근 하남시나 남양주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서울지역의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세입자들이 아파트에서 연립주택으로, 서울 중심에서 수도권으로 떠밀려가는 '엑소더스(exodus·탈출)'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계속해서 오르고 물건마저 부족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상대적으로 값이 싼 연립·다세대 주택과 서울 외곽, 수도권 등지로 내몰리는 '전세난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달 연립주택 전셋값 상승률은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을 웃돌았다. 특히 경기지역의 전세가율이 70% 가까이 치솟는 등 전세난에 따른 세입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 월세전환에 재건축 이주까지…연립·다세대, 수도권도 '품귀'
 
최근 전세난의 원인은 여러 악재들이 혼재된 결과다. 세입자들은 전세를 선호하는 반면 저금리 기조하에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며 전세물건이 급감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만기가 되면 상당수 집주인들은 전셋값 인상분을 월세로 받길 원하지만 세입자들은 월세 부담에 난색을 표한다"며 "그나마도 재계약이 많고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수요공급 원칙에 의해 전셋값이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절적인 학군수요와 신혼부부 수요는 기본. 여기에 최근 강남권 재건축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재건축 이주 수요가 또다른 변수로 가세했다.
 
강동구의 경우 고덕동 고덕 주공4단지(410가구)가 작년 말부터 이주를 시작했고, 명일동 삼익 1차(1천560가구)가 이달 중에, 상일동 고덕 주공2단지(2천600가구)가 내달부터 이주를 시작하는 등 1분기에만 4천570가구가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다. 
 
이들 단지의 경우 이주 대상의 70∼80%가 조합의 이주비 지원이 없는 세입자여서 서민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는 게 현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고덕동 고일공인중개사무소 허봉욱 대표는 "집주인들은 여윳돈을 보태 집을 사기도 하지만 싼 값에 전세를 살던 세입자들은 당장 거주할 전셋집 찾기도 힘든 상항"이라며 "인근 연립·다세대 전세도 가격이 높고 전세가 동이나 물건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했다. 
 
고덕동 양지공인 이덕원 대표는 "이 동네에서 전세를 못구한 세입자들이 울며겨자먹기로 남양주 덕소·하남 등으로 밀려나가고 있다"며 "재건축 이주가 가을 이사철까지 진행될 예정이어서 이 지역 전세난이 1년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서초구 잠원·반포동 일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재 잠원동 한양, 한신 5차 등의 아파트 이주가 진행되면서 인근 아파트 전세물건이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학군과 무관한 사람들은 서초구 내곡동이나 가까운 성동구 옥수동·행당동, 동작구 흑석동 등 강북이나 비강남권으로 거주지를 옮기기도 한다.
 
잠원동 양지공인 이덕원 대표는 "한양·한신5차 등 109㎡은 전세보증금이 3억5천만원 정도인데 재건축 대상이 아닌 다른 아파트는 전셋값이 싼 게 6억원 선"이라며 "전세대출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증금 수준에 맞춰 인근 연립이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연립주택 전세 상승률 아파트 추월…전세가율도 사상 최고
 
이처럼 서울 아파트의 전세난이 심화되면서 대체상품인 연립·다세대주택 전셋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잇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0.41% 오른 반면 연립주택은 0.43% 상승해 아파트 상승률을 추월했다.
 
한강 이남지역은 연립(0.29%)에 비해 아파트(0.50%)의 상승폭이 컸지만 서민층이 많은 한강 이북지역은 연립주택(0.57%)의 오름폭이 아파트(0.27%)의 2배가 넘었다. 
 
연립주택의 전셋값이 오르면서 지난달 서울지역 연립주택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63.9%로 2011년 조사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전세가율도 매달 최고치를 경신한지 오래다.
 
지난달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율이 70.2%로 두달 연속 70%를 넘어선 가운데 서울 전세가율은 66.1%로 1998년 조사 이래 가장 높았다.
 
특히 경기도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69.5%로 전월(69.1%)보다 0.4%포인트 높아지면서 70%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연구위원은 "서울 전세난이 수도권으로 확산하면서 수도권의 전셋값도 계속해서 상승하는 추세"라며 "설 이후 봄 이사철이 본격화될 경우 전세난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 정부 재건축 이주 시기조정 '유명무실'…적극 대처해야
 
이처럼 연초부터 전세난이 심화된데는 재건축 이주시기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도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는 재건축 이주로 전월세 가격이 들썩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10·30 전월세 대책에서 재건축 이주시기를 적극적으로 분산하기로 했다.
 
종전까지는 해당 재건축 이주 아파트의 단지가 2천가구가 넘으면 이주 시기 심의를 받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동 단위로 확대해 해당 동에서 이주를 하는 재건축 단지의 가구수 합계가 2천가구 이상이면 지자체의 심의를 거쳐 1년 이내에서 이주시기를 조율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강동구에서 이주를 계획중인 재건축 단지는 이미 서울시가 관련 조례를 개정하기 전에 이주 승인을 내줬다.
 
명일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일부 주민과 중개업소들이 전세난을 우려해 시와 구청을 통해 이주시기 분산을 요구했지만 2천가구 미만이고 법정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이들 단지가 한꺼번에 이주를 하면서 이 지역 전세난을 가중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강동구의 아파트 전셋값은 0.88% 올라 서울지역 전체를 통틀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평균 상승률(0.41%)과 비교해서도 2배가 넘는 수치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5천가구에 육박하는 단지가 한꺼번에 이주하면서 가뜩이나 없는 전세가격이 더 치솟고 있다"며 "주민들 민원 때문에 이주시기 조정이 생각만큼 쉽지 않겠지만 인근 지역의 파급효과를 감안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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