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꽤 오랜만에 K형을 만났다. 그 전에도 몇 번 전화를 해서 만남을 원했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았다. 요즘엔 모친이 편찮아서 넉넉한 시간을 낼 수가 없단다. 나이에 비해서 동안이었던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였다.

K형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대단한 효자다. 72세의 나이에도 96세의 모친을 극진하게 돌보고 있다. 요즘 세상에선 찾아보기 힘든 효행의 본보기이다. 집밖에 나왔을 때는 자신의 행처를 집에 알리고, 자주 집으로 전화하여 모친의 근태를 확인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모친이 불편해 한다면서 술자리를 작파하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기도 했던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두보의 시구에서 나왔듯,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70세까지 살기가 드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의 한국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80을 훌쩍 뛰어넘었다고 한다. 사고가 아니거나 병이 생기지 않으면 너나없이 80 이상은 누구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60은 청춘이라 했듯, 요즘 경로당에 가서보면 70세 노인은 신참이다. 아직도 정정한 80~90세 노인들의 잔심부름하는 처지다.

K형의 모친도 정정하게 90을 넘기고 5년이 지나면서 급격하게 몸이 쇠약해졌다고 했다. 그 전에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함께 팔짱을 끼고 아파트 주변을 몇 바퀴 돌면서 걷기 운동도 자주하여 동년배에 비해 매우 건강함을 보였는데 근래에 와서 아주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고 걱정을 했다. 병원 몇 군데를 다녀왔는데, 속병은 없다고 했다.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소진 중이라 했다. " 이제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는 중이네. 젊었을 적에 소원풀이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이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 " 내가 보기엔 형만큼 극진하게 어머님을 모신 분을 보지 못했어요. 그 이상 더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너무 애석해 하지 마십시오" 술기가 올라가면서 K형은 점점 자신의 효성이 모자람을 자책하고 있었다.

며칠 전 신문에서도 K형처럼 늙은 자식이 더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내용이 기사화되었었다. 85세 이상 노인들이 늘어나면서 노·노(老老)봉양 가구가 늘고 있단다. 자손들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가정들도 더러 있겠지만 대부분은 제대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은퇴한 60~70대 자녀 노인들이 팔순, 구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쉽지 않은 일이라고 비관적인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런 가구가 전국적으로 15만 가구에 이른다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 100세 시대로 접어든 오늘날, 고령화 사회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긴 하지만 늙은 자녀와 늙은 부모의 버거운 동거가 노·노 학대를 불러와, 노인 자살률이 10만명 당 123명으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니 예삿일이 아니다.

"나도 그 기사를 읽었네만, 사람들이 그래선 안 되지. 노망한다고 아들과 며느리가 제 부모를 낯선 데 버리고 오다니 대체 그게 사람인가. "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아들 내외가 휴가를 가자며 남해로 떠나서 혼자 놔두고 돌아와 버렸다. 길을 잃고 헤매던 아버지는 경찰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왔으나, 아들은 '처음 본 사람'이라며 시치미를 떼서, 결국은 관련기관과 협의해 요양시설로 보내졌다는 내용이다. 그 외에도 며느리에게 매 맞는 부모, 사위의 눈치를 보며 사는 장모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70 넘은 나이에 반찬투정하는 시어머니 모시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서럽게 우는 며느리와 자식들에게 대우받으며 살 나이에 이 무슨 고생이냐며 부모를 원망하는 자식들의 사례도 함께 나와 있었다. 

이처럼 부모 모시기를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K형처럼 극진한 효자도 아직까진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한참 생각해도 선뜻 답을 내기엔 매우 곤혹스런 질문이 하나 생겼다. '과연 우리 노인들의 장수는 축복 받을 일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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