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미술가들 가운데는 가족을 모델로 다룬 경우가 적지 않다. 단순한 모델로서 부인이나 아이들을 그리는 예도 있고 가족이란 단위(자신을 포함해서 부인과 아이들이 한 단위가 된)의 그림도 있다. 미술가가 자신을 포함해서 부인이나 아이들을 모델로 다룬다는 것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부인의 모습이나 귀여운 아이들, 특히 소녀상은 미술가의 특별한 애정표현이기도 하지만 자기 가족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심정도 다분히 내포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쨌거나 이들 초상화는 미술가의 다감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보는 이들에게 흐뭇한 느낌을 준다.

본격적인 작품 외에 드로잉을 많이 남긴 대표적인 미술가로 조각가 김종영을 꼽는데 태반의 드로잉의 모델이 그 가족들이다. 부인과 아이들의 자연스런 모습들이 마치 일기처럼 다루어져 그의 남다른 가족애를 엿보게 한다. 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 책에 파묻혀 공부에 열심인 아이의 모습 등 한결같이 일상생활의 단면이 일기처럼 기록되고 있다. 

같은 조각가로 김정숙은 「엄마와 아기」란 작품을 여러 점 남기고 있는데 이는 자신과 그의 두 아이를 모델로 한 것이다. 아이를 두고 외국에 유학가 있었던 그에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유달랐을 것이다. 그것이 엄마를 중심으로 서로 얽혀있는 아이들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엄마와 두 아들은 각각 개별이지만 동시에 한 몸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의 짙은 가족애를 만나게 하고 있다.

가족을 가장 많이 그린 화가는 장욱진과 이중섭일 것이다. 지난해 연말 장욱진미술관에서 열린 '장욱진의 그림 편지-선물전'은 주제가 가족이다. 가족들에게 보낸 선물, 그림을 모은 것인데 자화상을 포함해서 부부와 아이들이 어울린 가족도가 중심을 이뤘다. 부인을 모델로 한 그림에서부터 가족들에게 기념으로 그려준 그림들이다. 생일을 축하해 그려준 그림에서부터 가족들이 특별한 날을 맞았을 때를 기념해서 그려준 그림에 이르기까지 짙은 가족애의 편린을 만나게 해주었다. 다정다감한 화가의 내면을 보여준 것이어서 어떤 그림보다도 정감이 가는 것이었다. 그는 글 속에서도 "나는 또한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고 했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미술가가 있을까마는 이토록 그림으로 그 애정을 표현한 예는 유달리 우리들에게 감동을 준다.

지난 2월 초 서울의 현대화랑에선 '이중섭의 사랑-가족'이란 전시가 열려 요절한 천재화가의 짙은 가족애를 만나는 기회가 됐다. 50년대 전에 그려진 엽서 그림들은 그가 일본 여성 마사코에게 보낸 연서의 일종이다. 글은 거의 없고 그림으로 자신의 애정을 표현한 독특한 양식이다. 50년대 초반의 그림편지는 일본에 건너가있는 부인 마사코(한국명 - 이남덕)와 두 아들(태현, 태성)에게 보낸 것이다. 그림들 가운데 제주의 풍경이 나오는 것은 이들 가족이 북에서 피난와 한 때를 제주 서귀포에서 보낸 때의 추억이 기록된 것이다. 「그리운 제주도 풍경」은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게들과 어울려 뛰노는 두 아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과 부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이란 은지화는 지상낙원을 찾아온 가족들이 어울려 과일 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 모티브의 작품이 여러 점 드로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언젠가 이를 본격적인 유화작품으로 남길 계획을 세웠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족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길 떠나는 가족」이다. 두 장의 유화와 그림편지로 남아있다.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화가의 염원이 담긴 작품이어서 더욱 기념비적인 가치를 지닌다. 편지엔 "엄마와 야스카다(태현)가 소달구지에 타고 아빠는 앞에서 소를 끌고 따뜻한 남쪽나라에 함께 가는 그림을 그렸어"라고 적고 있다. 가족들이 함께 가는 낙원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화가의 가슴은 얼마나 벅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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