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익 수필가·논설위원

   
 
     
 
장기 일기예보를 감 잡기는 쉽지 않다. 11월까지 날씨는 온화했다. 기상청에서도 올 겨울 추위는 별로라고 예보할 정도였다. 업체들은 아웃도어를 산처럼 쌓아놓고 추위가 어서 들이닥치기만을 기다리는 중에 돌출한 일기예보여서 업체들의 안달은 극에 달했다. 재고가 창고를 가득 메울 것으로 여겨, 저가로 판촉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겨울은 겨울이었다. 12월로 들어서자 느닷없이 하늬바람이 서북풍을 타고 온 산하를 강타,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칼바람 앞에 초목은 물론 동물들도 어디론가 숨어들기에 바빴다. 겨울로 들어서는 첫 추위가 그리 매서우니 올 추위의 혹독함을 미리 예감하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으리라.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리 겁낼 상황은 아니었다. 겨울은 추위의 상징이기에 어찌 춥지 않을 수 있으랴마는 아무래도 지구온난화의 여파인 듯싶다. 몇 차례 살을 에는 한파 특보가 이어지기도 했으나 예년에 비할 맹추위는 아니었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이 없나 보다. 입춘이 지난 지도 20일, 우수를 설날에 맞이하고 나니 이제 경칩이 열흘 안이다. 가슴이 설레온다. 백야와 함께 나타난다는 매화를 뒤로 하고 이제 개나리와 유채, 그리고 벚꽃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봄이 만개할 것이다. 

3월의 하늘은 짙푸름. 종달새가 창공 높이 날아오르며 봄을 우짖겠지. 우러러 그런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을 가슴 한 아름 안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 창공에 어리는 희망은 신학기를 맞이하면서 더욱 돋아나리.

봄은 학년도를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것은 계단 하나씩을 뛰어오르는 가슴 벅참도 뒤따르겠지만 만남이 새로이 이루어짐을 뜻하기도 한다. 어머니 손을 맞잡고 입학식에 참석하려고 교정으로 들어서는 아동의 머릿속에는 '내 담임 선생님은 누구일까?'하는 궁금증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책가방을 비롯해서 교과서며 공책 필기도구 등 모든 게 새것이다. 교실도 바뀌어졌으니 어찌 낯설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입학식하면 J여고에 근무할 때가 떠오른다.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교정에서 늘 교장 선생님은 첫 단추를 어떻게 꿰매어야 하는가를 강조하셨다.

시인 괴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어진다"고 갈파했다. 시작의 중요함을 지적한 것이다. 백두산 천지의 물도 동쪽으로 흐르면 두만강을 거쳐 동해로 빠지고, 서쪽으로 흐르면 압록강을 지나 서해에 도달한다.

우리 생활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을 탔을 때 까딱 한 발짝을 잘못 내딛으면 엉뚱한 곳에 이르기도 한다. 올바른 출발은 바람직한 결과에 도달하지만 잘못된 출발은 그릇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뿌린 씨앗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는 것은 정한 이치다.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결실을 바란다거나 쭉정이 같은 씨앗으로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특히 신학기를 맞이한 학생들은 첫 단추를 잘 꿰매어야 한다. 시작부터 마음이 다른 데로 팔리거나, 친구들의 꾐에 빠져 학생의 신분을 망각하게 된다면 바람직한 결과에 도달할 수 없다. 희망이 나래치는 봄을 맞이하는 학생들은 성실을 벗 삼아 첫 단추를 잘 끼워 출발을 올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첫 단추를 꿰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제주도와 제주의회 사이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벌이는 기 싸움이 도를 넘고 있다. 서로들 자기들 입장에만 골몰하다 보니 어찌 도민들의 살림살이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첫 단추를 잘못 꿰맸다는 인상이 짙다. 한번 잘못 들여놓은 단추는 계속 헛손질하기 마련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서로 윈윈하는 자세로 마주앉아 자라나는 2세들은 물론 도민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 훌륭한 성과를 일궈나갔으면 한다.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매섭다. 앞으로 일주일만 기다리노라면 춘삼월로 들어설 것이다. 그 계절에 단추를 어찌 꿰매는지, 그날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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