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성 독립운동 열전 1) 고수선 지사

서울 유학 제주여성 1세대…임시정부 지원 활약
의사·사회사업가·정치인 등 지역여성사 '산증인'
 
광복 70년. 세상은 수 십 번도 더 바뀌었지만 독립운동사(史)에 있어 여성들의 이름은 역사의 그늘에 묻힌 채 존재감을 잃고 있다. 몇몇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으며 그나마 이름이라도 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이들에 대한 관심은 소박하다. '유공자 심사에 필요한 공적조서를 채울 기록'은 부족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있어 이 땅에 '봄'이 왔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 독립기념관과 제주항일기념관, 해녀박물관, 「제주항일인사실기」(김찬흡·북제주군·) 등 관련 자료 속에 오롯한 그들의 흔적을 짚어본다.
 
요즘도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살기에는 녹록치 않은데 한 세기 앞서 여성으로 '첫' 삶을 개척한 이가 있다. 제주여성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수선(1898~1989) 지사다. 가파도 출신인 고 지사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제주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1990년 독립유공자 서훈(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것 외에도 처음으로 서울 유학한 제주 여성들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제주 여성 중에는 처음으로 의사면허를 소지한 것도 그다. 제1대 도민회(도의회).제3대 민의원(국회의원)에 출마하며 제주 여성의 정치 참여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도 장식했다. 제주여성청년회(1925년) 초대회장 등 여성.사회 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이후 건국운동과 사회운동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제주모자원사익보육원 개설 운영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말년 대한노인회 제주도연합회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국악협회 제주도지부장, 한국예총 제주도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말 그대로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1919년 3.1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독립군 자금을 모금해 송금하는 등 임시정부 지원 활동을 하다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조국 광복'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54년 3대 국회의원 출마 당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외친 남성 입후보자에게 "암탉이 울어야 새벽이 오는 법"이라 되받아쳤던 일화는 그를 논리적인 사상가로 기억하게 한다.
 
이런 업적들로 제1회 만덕봉사상(1980년)과 용신봉사상(1978),5 ·16민족상 사회부문상(1981)을 받았다. 독립운동에 대한 공로로 1980년 독립유공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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