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제주국제대학교 부속 지역아동센터지원단장·논설위원

   
 
     
 
정말 짜증 난다. 어제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의장의 공동기자회견을 들으면서다.

예산갈등의 흐름에서 자신들이 보여준 행태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았다. 심려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로 끝냈으면 좋으련만 서로 싸움질 한 것이 "한푼의 예산이라도 낭비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서 발생"된 것이라 한다. 도민을 어떻게 보는 것인지.

어떤 사안이든 '골든 타임'이 존재한다. 해당 타이밍을 적절히 치고 나가면 좋은성과를 얻고 또 새로운 차원의 기회를 얻어낼 수도 있다. 반면 골든 타임을 놓치면 두고두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며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제주의 예산상황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책에 대한 일언반구의 사과가 없다.

"될 때까지 하겠다" "갈 때까지 가겠다"는 오기와 감정을 거칠게 보이면서도 입만 열면 민생을 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도자를 바라봐야하는 도민의 심정은 참담하다.

누구를 위해 "될 때까지 하겠다"는 것인가. "갈 때까지 가겠다"는 곳이 어디인가. 도민이 함께 하지 않으면 될 일이 없고, 도민이 함께 걸어주지 않으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상처받은 도민의 심정이다. 

양배추를 재배한 농민이 밭을 갈아엎었다 한다. 제정신으로는 차마 할 수 없어 소주 2병을 먹고 자식 돌보듯 키운 그것들을 헤 갈았다 한다.

그러고 나니 빚이 걱정이란다. 월동 무, 당근, 브로콜리 등 다른 농작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설상가상 노지감귤 가격마저 2009년 이후 최저가격으로 떨어졌다. 뼈 빠지게 농사지었지만 먹고 살기는 커녕 생산원가 건지기도 어렵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농가부채는 전국 2위다. 성난 농심이라고 했던가. 이 땅의 농민은 이제 성을 낼 힘조차 잃었다. 제주의 집행부와 의회가 살려내야 할 민생이고 될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300만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수혜를 받았다는 도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중국인들이 물밀듯 몰려오지만 과실은 면세점을 운영하는 대기업의 몫이고, 제주에 좌판을 깔고 터를 잡은 중국인 장사꾼이 싹쓸이 하고 있다.

소자본 자영업자들은 임대료만 턱없이 올라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원성이다. 취업이 도저히 안돼서 아버지 퇴직금으로 비싼 권리금 주고 창업을 했는데, 건물이 중국인에게 팔려서 쫓겨 날 신세가 된 청년의 암담한 절망, 화려한 관광제주의 그늘이다. 제주의 집행부와 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이고 끝장내야 할 일이다.

집행부, 의회 할 것 없이  도민에게 석고대죄 해야 할 죄목이 한 둘이 아니다. 민생을 뒷전으로 하고 정쟁을 벌인 죄, 도민을 무시한 죄, 도민을 위한다는 거짓말을 한 죄. 무엇보다 큰 죄는 도민과 도의원에게 품었던 기대와 꿈을 좌절시킨 '희망 고문'을 벌인 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사와 도의원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제주를 이끌어가는 우리의 지도자이고 공동운명체이기에 그렇다. 또한 우리의 선택이기에 그렇다.

도지사와 도의원이 자존심이 있다면 도민도 자존심이 있다.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자존심을 갖고 싶다. 도지사와 도의원을 지지했거나 지지하지 않았거나 마찬가지다.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가 지금 제주의 서민, 민생의 최대화두이다. 진정 도민만을 사랑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우다가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지라는 판결을 내리자 "내 아이가 아닙니다"라고 외친, 오로지 아이만을 생각하여 자기를 포기하는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어머니 같은 지도자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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