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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모자이니 다른 해녀 석방시켜라"[제주 여성 독립운동 열전] 3. 김옥련·부춘화·부덕량·고순효·김계석
고경호 기자
입력 2015-03-03 (화) 20:22:58 | 승인 2015-03-03 (화) 21:05:26 | 최종수정 2015-03-03 (화) 22:24:42
   
 
     
 
제주 해녀 항일항쟁 이끈 대표 5인
야학서 교육 받으며 항일정신 키워
 
"배움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 가엾은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해녀의 노래 중>

우리나라 최대 어민운동이자 여성운동이며 제주 3대 항일운동 중 하나인 '제주 해녀 항일항쟁'(이하 잠녀항쟁)은 부춘화(1908~1995)·김옥련(1907~2005)·부덕량(1910~1939)·김계석(1913~?)·고순효(본명 고차동·1915~?) 등 5인의 해녀 대표가 이끌었다.
 
이들은 사회주의 계열 비밀결사조직인 혁우동맹 산하 하도강습소 1기 졸업생들로 이곳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교육을 받았다.
 
1929년 하도리에는 제국주의 일본의 부당한 착취와 억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민족의식과 함께 항일 정신을 키워갔던 부인회·소녀회 등의 여성 단체가 조직돼 있었으며 당시의 부인회장과 소녀회장이 바로 부춘화와 김옥련이었다.
 
   
 
  ▲ 제주해녀항일운동 대표 5인이 다녔던 하도강습소 제1회 졸업기념 사진. 윗줄 왼쪽부터 홍문봉 부춘화 김봉혁 김옥련 송순옥 부덕량 고순효(이상 졸업생)이며 가운뎃줄 왼쪽에 있는 청년은 부춘화의 오빠 부승림이다. 자료사진  
 
이들 5인이 주도한 잠녀항쟁은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진행됐으며, 제주시 구좌읍·성산읍·우도면 일대에서 1만7000여명이 참여해 무려 238회의 집회 및 시위를 전개했다.
 
잠녀항쟁은 제주도사(島司)가 조합장을 맡고 있는 어업조합이 해산물을 헐값에 강탈하고 각종 세금을 부과하며 착취하자 이에 대항해 발발했다.
 
1932년 1월7일 세화오일장에 모인 잠녀 수백명은 "너희들이 총칼로 대항하면 우리는 죽음으로 대항한다" 등을 외쳤으며, 5일 뒤인 12일에는 잠녀 1000여명이 세화리 오일장에 모여들어 순시차 방문한 제주도사의 차를 가로막고 호미와 창을 휘두르며 일제의 수탈에 저항했다.
 
이후 수십명의 해녀들이 구속되자 이들 5인은 모진 고문에도 자신들이 주모자임을 스스로 밝히며 동료들을 석방시키는데 앞장섰다.
 
이렇듯 잠녀항쟁은 '여성 중심의 첫 생존권 투쟁'이자 일본의 수탈에 저항했던 '항일운동'이었지만 사회주의 색채가 있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며 70여년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지난 1995년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가 결성돼 잠녀항쟁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2003년 부춘화 잠녀와 김옥련 잠녀가, 2005년 부덕량 잠녀가 국가유공자로 선정됐지만 아직도 김계석·고순효 잠녀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경호 기자

고경호 기자  kkh@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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