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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같은 삶…지금도 제주여성의 '혼불'로 남아[제주 여성 독립운동 열전] 4. 강평국·김시숙·김진현·이경선
고경호 기자
입력 2015-03-04 (수) 20:21:20 | 승인 2015-03-04 (수) 20:29:11 | 최종수정 2015-03-05 (수) 15:40:36
   
 
  ▲ 사진 왼쪽부터 강평국, 이경선, 김진현.  
 
교육 통해 민족의식 깨치며 독립 위해 헌신
도내·외 물론 일본서 다양한 항일운동 펼쳐
 
100여년 전 제주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당시엔 호사스런 일이었지만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깨우치며 대한독립을 위해 몸 바쳐 희생한 '제주여성'들이 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후손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들의 '불꽃'같은 생애는 현 시대를 사는 제주여성들에게 '혼불'로 살아있다.
 
제주 여성교사 1호 강평국(1900~1933)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노라며 본명인 '연국'(年國)을 '평국'(平國)으로 고쳐 사용할 만큼 항일정신이 투철했다.
 
1910년 신성여학교에 입학한 강평국은 1915년 동기 최정숙(우리나라 최초 여성 교육감·초대 도교육감), 고수선(도내 1호 여의사)과 함께 졸업 후 1919년 3월 만세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강평국은 1921년 최정숙과 함께 '여수원'(女修園)을 개원, 도내 여성에 대한 문맹 퇴치와 초등 교육 및 계몽운동을 펼쳤으며 이는 제주지역 여성운동의 시초가 됐다.
 
일본으로의 유학길 역시 독립운동이라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1927년 1월 창립된 '조선여자청년동맹'에서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창립된 '신간회' 동경지회에서 부인부 책임자로, 또 이듬해 1월 '근우회' 동경지회가 결성되자 의장단으로서 활약했다.
 
이후 일제 당국에 의해 1933년 검거돼 병사할 때까지 강평국의 33년 짧은 생애 속에는 국가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국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여공보호회·여공노동소비조합을 조직하고 신진회 활동을 통해 항일운동을 펼친 김시숙(1880~1933)은 불혹의 나이에 글을 배워 신여성으로 활동한 독립 운동가이다.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간 김시숙은 수많은 조국의 여성들이 일제에 의해 착취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는 등 여공들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1933년 54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당시 제주 출신 여성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선각 여성 김시숙 호상(護喪)부인회'를 조직, 김시숙을 제주로 운구해 조천 공동묘지에 안장하기도 했다.
 
여성독립운동가 김진현(1911~2001)은 1929년 전남 광주에서 항일학생운동이 전개되자 진명·숙명·근화·정신·동덕·배화 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들과 함께 서울에서의 궐기를 도모했다.
 
이에 김진현 등 학생 대표들은 '일본의 침략전쟁에 반대하라' 등의 격문과 함께 태극기 100여장을 제작해 1930년 1월15일 봉기, 항일학생운동을 전개했다.
 
다음달 서대문경찰서에 의해 체포당한 김진현은 2개월간 심한 고문을 견디며 옥고를 치러야 했다.
 
역시 서울에서 항일학생운동에 참여한 이경선(1914~?)은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진학 당시 독서회를 조직해 일제에 저항했다. 특히 서울시내 고등보통학교에 항일 독서회를 창설토록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이경선은 경기도와 강원도를 중심으로 노동자 등을 망라한 조선공산당 재건동맹으로 활동하던 중 1934년 2월 체포됐다.
 
이경선은 옥중 자술서를 통해 "나도 여자이니 되도록 조선인을 위해 큰일을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것이 어린 마음 속 깊이 지배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고경호 기자

고경호 기자  kkh@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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