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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시대 5개월만에 해산…34년간 암울한 역사[창의와 도전으로 더 큰 제주/ 지방자치 미래를 말한다] 2. 지방자치 출범과 해산
이창민 기자
입력 2015-03-17 (화) 16:13:48 | 승인 2015-03-17 (화) 18:54:25 | 최종수정 2015-03-17 (화) 20:33:23

 

   
 
  ▲ 민정 시찰에 나선 제2대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1952년 5월 초대 제주도의회 개원…지방자치 문 활짝
1960년 지사·의원 선출 민선 돌입…5·16쿠데타로 해산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씨앗을 심은 지방자치. 1960년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이 동시에 선출되는 등 첫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1961년 5·16 쿠데타로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지방자치 시계'는 멈춰버렸다. 이후 1991년 지방의회 부활, 1995년 4대 동시 지방선거 실시 이전까지 지방자치는 암울한 역사를 보냈다.


지방자치 시작됐다

지금이야 지역 주민들이 지방정부와 지방의회, 지방교육청을 이끌어갈 일꾼을 뽑는 일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지방선거의 역사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자치는 해방 이후 1949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법으로 보장됐으나 한국전쟁과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첫 지방선거는 1952년이 돼서야 치러졌다.

1952년 4월 25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읍·면의회 의원 선거가 치러졌고 5월10일 광역의회 의회선거가 실시돼 5월20일 초대 제주도의회가 개원했다. 당시 북제주군 의원 13명, 남제주군 의원 7명 등 20명이 제주 지방자치의 문을 활짝 열었다.

초대 제주도의회는 1956년 7월24일까지 4·3사건 등 사회가 혼란스럽고 주민들의 자치의식이 높지 않는 상황에서 집행기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다했다.

고구마 가격 협상, 출가 제주해녀 보호, 제주읍의 시승격 정부 건의, 제주도립의원 운영체계 개선 등 현안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민생 시찰을 통해 도민들의 여론을 적극 수렴, 나름대로 첫 의정 단추를 잘 꿰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어 1956년 8월13일 지방의회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제2대 제주도의회는 도제폐지반대특별위원회를 가동, 제주를 전남에 예속시키려는 중앙정부에 맞서고 사라호 태풍피해를 비롯해 춘궁기 절량농가 대책 마련 등 능동적인 의정활동을 펼쳤다.

 사상 첫 민선시대 돌입

   
 
  ▲ 제3대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1960년 12월22일 개원,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3대 제주도의회는 5·16 쿠데타에 의해 해산이라는 비운을 겪었다.  
 

1960년, 도민들이 선거로 제주도지사를 선출하는 등 지방자치가 진전됐다. 1956년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지방의회에서 선출했던 시·읍·면장을 주민들이 직접 뽑도록 바뀌었다. 특히 1960년 4·19 이후, 기초자치단체장은 물론 광역자치단체장도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도록 지방자치법이 바뀌었다.

같은 해 12월 29일 첫 실시된 도지사 선거에 5명이 입후보, 무소속 강성익 후보가 26.7%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시 투표율은 63.2%로 전국(평균 투표율 38.8%)에서 가장 높았으나 그 동안 제주에서 실시됐던 각종 선거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월 들어 제주도의회, 시·읍·면 의회, 시·읍·면장 등 3차례 선거가 실시되면서 상대적으로 도지사 선거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데다 투표 당일 기상이 악화됐기 때문이었다.

이에 앞서 12월12일 지방의회 선거로 당선된 제3대 제주도의회는 제주시 6명, 북제주군 6명, 남제주군 6명 등 18명으로 해 내무위원회, 산업위원회, 문교사회위원회, 징계자격위원회, 예산결산위원회 등 5개 상임위원회를 두었다.

1960년 세 번째 지방선거는 무소속이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를 독점하는 등 '제주=무소속 강세'를 알렸다.

지방자치 뿌리 뽑히다

1952년 이후, 4년간 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지방자치 영역은 각급 지방의회에서 자치단체장까지 조금씩 넓혀져갔다. 하지만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지방자치 시계'도 멈춰버렸다.

1961년 1월 4일 취임한 강성익 지사는 취임 5개월만에 물러났고 5·16 군사정부는 5월24일 김영관 해군준장을 제주도지사에 임명했다. 이로써 민선자치단체장 시대는 자치행정을 제대로 구가해보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다시 관선 임명단체장 시대로 회귀하게 됐다.

제3대 제주도의회 역시 5개월 활동하다 해산되는 등 지방자치의 뿌리가 뽑히는 암울한 역사를 맞는다. 이후 중앙에 집중된 정치권력을 분산시키고 시민의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자치는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을 타고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는 등 부활하기 시작했다. 30년이라는 긴 시작이 지난 뒤에야 지방자치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창민 기자

"풀뿌리 민주주의 후퇴 초래"

김영훈 전 제주시장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출범한 제주도의회가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해산되면서 제주는 물론 대한민국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30년간 발전하지 못했다"

제4~7대 4번의 제주도의회 의원과 제주시장(민선·행정)을 지낸 김영훈 전 제주도의회 의장은 "제3대 제주도의회가 1960년 12월 22일 개원했지만 6개월만인 1961년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에 따라 해산되는 운명을 맞았다"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1991년 초대 시·군의회, 4대 도의회가 출범할 때까지 30년간 암흑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자유당 정권이 3·15 부정선거과 4·19혁명으로 인해 붕괴되면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울 기회를 잡았지만 지방의회 해산으로 물거품이 됐다"며 "의회 해산으로 지방정치에 주민들의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됐고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한다는 지방자치의 의미도 퇴색됐다"고 꼬집었다.

김 전 의장은 1991년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2006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시·군의회가 폐지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기초자치단체·의회도 폐지, '제왕적 도지사'와 광역의회에서 기초의회 역할까지 수행하는 기형적 의회형태가 나타났다"며 "이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도정이 행정시 권한·기능 강화를 위해 인사권·예산권 이양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자치권이 없기 때문에 도지사 또는 도청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며 "기초단체·의회 부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창민 기자  lcm9806@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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