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동북아챕터 대표·논설위원

   
 
     
 
중산층은 흔히 'middle class'의 우리말 표현으로 쓰이지만 우선 개념 정의가 필요한 단어다. OECD는 전 가구 중위 소득의 50%에서 150%에 해당되는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주별 통계에서 각 주 중위 소득의 67%에서 200% 급간에 자리한 경우를 중산층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 기준을 따른 국토교통부의 중산층 소득범위는 월 177만원에서 531만원 사이라고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국내 중산층 비중은 약 67%에 달한다. 반면 한 씽크탱크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이상적 중산층의 월 세후소득은 515만원이었다.

이 설문에서 응답자 가구의 실제 세후소득이 월 평균 416만원이라 했으니, 정부의 한 연구결과 중산층이 아니라고 답한 응답률이 80%에 육박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이처럼 통계 기준과 체감 기준에 따라 답이 엇갈리는 것은 마땅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체감 기준의 엄밀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방향성과 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 OECD 기준에 따르면 1990년 75%를 상회했던 중산층 비중은 25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3년 67%로 급락했다.

중산층 대열을 지키는 가구라 해도 위기의 그늘은 짙고 넓은 게 현실이다. 1990년과 2013년을 비교해보자면, 총 소비지출 중 월세지출 비중은 11.9%에서 12.8%로, 전세보증금 증가율은 동 기간 연평균 11.8% 늘었다. 무엇보다 한국 가계를 짓누르고 있는 교육비 비중 또한 13.4%에서 20.9%로 늘어 오락 문화 등 다른 여가지출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반면 동기간 동안 한국은 군부 집권의 과거를 씻고 개방적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일취월장 했으며 경제력 또한 당당히 G20의 일원으로서 글로벌 교역 주도국 중 하나로 올라섰다.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람은 고사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중산층 몫을 대체 누구가 채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이런 현상이 한국을 너머 전 지구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 50개 중 대부분의 주에서 2000~2013년 기간 동안 중산층 비중이 5% 가까이 줄었다. 심지어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중위 소득이 추락한 주도 상당수였다. 일례로 미 중북부의 낙농업 중심지로 비교적 윤택한 지역이었던 위스콘신주 중산층 중위소득은 동기간 약 6만 달러에서 5만1000달러로 추락했다. 2016년 미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손꼽히는 현주지사 스콧 워커로서는 난감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미국에 비해 한국 중산층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 미 중산층 가계를 짓누르는 가장 큰 부담이 소득의 30%에 육박하는 주거비라면 한국은 여기에 더해 교육비 지출까지 짊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용 안정성과 사회보장 또한 OECD 평균 이하라는 미국보다도 더 아래에 있는 형편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는 소득주도 성장이니 창조와 융합이니 하는 모든 담론은 결국 중산층 시대의 복원에 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국의 경우 무엇보다 가계의 주거비 및 교육비 부담 경감을 통해 가계소득의 실질적 향상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복지 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진영 다툼은 중산층 복원이란 난제를 회피하려는 이전투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미국의 경우도 이미 임금 노동자의 소득 제고와 조세형평성 강화가 다음 대선전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문제를 교묘히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해결하려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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