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석 편집국장

   
 
     
 
제주가 지금은 세계적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지만 탐라국 당시에는 척박한 땅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화산섬 특성상 척박한 땅과 거센 바람은 탐라인들에게 피땀을 흘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개척정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들고, 거센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물이 귀했기에 가뭄 때마다 농작물이 말라죽고, 태풍 내습때도 인명·재산 피해가 극심했다. 지금과 같은 불교·유교·기독교·천주교 등의 종교가 없었기에 탐라인들은 산·바다의 신(神)들에게 의지하면서 마을과 주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한라산신제·마을제·해신제·당굿 등으로 봉행된 민간신앙은 오랜시간 척박한 땅을 개척하며 생존·발전하는 근원으로 자리했다. 

탐라국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라산신제도 마찬가지다. 탐라국 당시 각종 질병과 바람·물·가뭄의 3대 재해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켜내려 봉행했던 한라산신제는 기록에 따르면 1703년 조선시대 이형상 목사의 건의로 국가 제례로 채택됐다. 2011년에는 한라산신제단이 제주도지정기념물 67호로 지정됐고, 2012년 제주도의회에서 제정된 '한라산신제봉행위원회 지원 조례'에 따라 도지사가 당연직 초헌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례 제정 이전에도 도백들이 초헌관을 맡아 국가 태평성대와 도민의 무사안녕을 기원했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인 원 지사가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2월 두 차례 한라산신제의 초헌관을 맡지 않으면서 종교적 편향성 논란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다른 일정을 이유로 박정하 정무부지사가 초헌관을 대신한데 이어 최근에는 원 지사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제관직 수행을 거부함에 따라 박 부지사가 또다시 대행했다. 반면 한라산신제봉행위원회측은 "전임 도지사들이 초헌관으로 참여한 행사를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불참한 것은 도백이란 공인의 의무를 저버린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이에대해 기독교 관련 단체들은 원 지사가 공직자라는 이유로 초헌관 수행을 거부한 것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원 지사가 한라산신제 보존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소홀한 마음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종교적 편향성에 대한 도민들의 의심의 눈길은 여전하다.

원 지사의 한라산신제 불참을 거론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을 두둔하거나 편향성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도지사의 종교적 행보로 초래된 찬·반 갈등이 수면 밑에 계속 잠복하면 도민대통합을 천명한 원 지사의 출마기자회견도 일회성 구호로 그칠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3월16일 출마기자회견부터 도민대통합 실천방향으로 제시한 '도민 참여의 수평적 협치' 약속도 어기는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

원 지사가 출마기자회견 당시 대권 도전의 질문을 받은후 "하늘이 대답하고 도민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도민들은 차기나 차차기 출마론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원 지사 측근에서도 재임중 협치를 실천해 '원희룡 성공스토리'를 써야 대권 도전도 가능할 것이라면서 출마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원 지사가 주변의 이야기처럼 대권 도전을 위해서는 '원희룡 성공스토리'가 아니라 협치를 활용해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주도민 성공스토리'를 써야 한다. 한라산신제처럼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초헌관 수행을 거부하는 편향적 행보 논란은 협치의 발목을 스스로 잡을 수 있다. 우리의 인체가 기능이 다른 좌심방과 우심방, 좌뇌와 우뇌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같은 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용광로처럼 찬·반의견을 녹여내는 상생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 지사 역시 자신이 쓴 「사랑의 정치」에서 "대중과의 일체감을 위해 대중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듯이 대립이 아닌 포용의 시대로 발걸음을 옮겨야 도민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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