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외교문서 등 26만쪽 공개…한중·북일 교차승인 추진논의도 포함

▲ 히로히토(裕仁) 일왕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우리나라 정상의 첫 일본 국빈 방문이 이뤄졌던 1984년 당시 일본은 일왕(日王)이 어떤 수준으로든 과거사 반성 발언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30일 밝혀졌다.
 
외교부는 이런 내용이 포함된 1천597권(26만여쪽)의 외교문서를 이날 공개했다. 정부는 생산한 지 30년 이상 된 외교문서를 대상으로 심의를 통해 공개하고 있으며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주로 1984년에 작성된 것이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84년 초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우리나라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국빈 방문하는 '무궁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1983년 우리나라를 공식 방문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총리의 방한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추진됐다.
 
 
한일 양국은 전 대통령의 9월 방문 일정을 확정하면서 의제 협의에 들어갔다. 핵심 관심사안은 과거 식민 지배의 상징적인 책임이 있는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과거사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할지였다.
 
우리는 국민 정서 등을 감안할 때 일왕의 과거사 반성 발언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발언 형식 또한 만찬사 등과 같이 공식적인 형태여야 한다는 입장을 일본에 직·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일본 역시 당시에는 일왕이 과거사 언급을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일본은 발언 내용 자체가 외교 교섭 대상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으며 우리 역시 의연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에 따라 별도로 교섭하지는 않았다.
 
이런 입장 속에서 히로히토 일왕은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참석한 만찬 때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 양국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일 이후 남북한을 중국 및 일본이 교차 승인하는 이른바 '한강개발계획'으로 명명된 계획도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구상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설득해 한국과 접촉에 응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우리 정부는 미·일에 이를 극비리 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1986년 아시안게임 전후에 한·중, 북·일간 교차 접촉을 본격화하고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동시 교차 승인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반응이 신통치 않게 나오면서 이 계획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밖에 1984년 김일성의 소련·동유럽 순방 이후 '김일성 조기 퇴진설'이 제기돼 정부가 대책 마련에 착수한 사실과 1983년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격추사건 이후 정부가 소련 외교관과의 접촉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렸다가 정세 변화를 이유로 1년도 안 돼 무효화했던 내용 등도 공개된 외교문서에 포함됐다.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에서 열람·출력을 할 수 있으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외교문서목록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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