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 인근에서 지난 10일 '세월호 기억의 숲' 착공식이 열렸다. 기억의 숲 조성은 영화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으로 유명한 20세기 대표 여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 션 헵번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유니세프 등을 후원했던 어머니 오드리 헵번의 뜻에 따라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고 가족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뜻이란다.

션 헵번은 "오늘 심는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많은 분들이 숲 조성에 참여해 달라. 이 숲은 세월호 참사로 상처입은 모든 분들을 위한 숲이며, 온 국민이 서로를 위로하고 희생자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장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우표 제작대행사 '골든애플즈'는 세월호 참사 때 많은 학생을 살리고 숨진 단원고 최혜정 교사와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를 기리는 미국 우표를 발행했다. 우표들은 일반에 판매되지 않고 유가족들에게만 전달되지만 국내·외에서 세월호 추모 우표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그런가하면 지난달 교황청을 찾은 한국 주교단에 던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질문이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는가"였다고 한다. 지난해 방한 때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하며 마음으로 껴안았던 교황은 여전히 세월호를 잊지않고 있었다.

1년전 우리도 그랬다. 바로 눈앞에서 304명의 목숨이 속절없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속수무책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가 앞에서 우리는 함께 비통해하고 눈물 흘리며 분노했다. 그리고 기억하자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능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보며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우리 사회의 병폐를 이번에는 확실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결코 잊지 않겠다던 그 다짐과 달리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도 변한 것이 없다. 그 끔직한 참사 앞에 너나없이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또다시 우리는 방관하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애꿎은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정부나 유관기관의 선박 안전점검은 여전히 허술한 상황이다. 수학여행지를 사전 점검하고 안전요원을 배치하겠다는 수학여행 안전 대책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서 학부모들은 불안하다. 국민들이 바라던 안전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뿐인가.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희생자들에 대한 구조작업이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밝히기 위해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도 지금까지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선체인양 문제 등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단식을 하고, 삭발을 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이제 피곤하니 그만하라는 말까지 나온다. 

망각의 힘이다. 참사 1년이 지나도록 정부가 속시원한 해결책 하나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깊어져가는데 우리는 바쁜 삶을 핑계로 그날의 비탄도, 안타까움도, 분노도 조금씩 잊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던 굳은 다짐들이 1년만에 이렇게 희미해질 수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지울 때 우리 사회는 다시 세월호 이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는 그저 과거 우리 사회가 겪었던 수많은 사고들 중의 하나가 돼버리고 말 것이다.

라틴어 사전에는 '진실의 반대어를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적고 있다.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집 '금요일에 돌아오렴'에서 가족들은 이렇게 탄식한다. '밝혀야 할 진실도 물어야 할 책임도 더는 없는 듯 세상은 돌아간다'고. 그 울먹임 앞에 세월호를 잊어가던 우리들의 무심함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내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다.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무디어진 우리의 기억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