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창의와 도전으로 더 큰 제주 지방자치 미래를 말한다 3.지방자치 부활

▲ 30여년간의 긴 동면을 깨고 지방의회가 부활했다. 제4대 제주도의회 의원들이 1991년 7월8일 개원식을 가진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제주도의회

1991년 지방의회 개원·1995년 4대 지방선거 실시
주민들 권리 확보 적극·예산 편성 등 실생활 변화
선거로 지역갈등·일부 주민 이기주의 행태 병폐로

1961년 5·16 쿠데타로 지방의회가 해산되면서 '지방자치 시계'는 멈춰버렸다. 하지만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1991년 지방의회 개원, 1995년 4대 동시 지방선거 실시 등 지방자치가 부활됐다. 이후 20년간 참여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일정 부분의 효과를 거두었으나 선거로 인한 지역 갈등, 지방재정 위기, 단체장과 지방의원 자질 논란 등 문제점을 노출했다.

헌정사상 첫 지방동시선거 실시

1960년 12월 주민들이 제주도지사와 제주시장, 제주도의원을 직접 선출하면서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는 듯 했으나 1961년 5·16 쿠데타로 암울한 역사를 맞았다. 1961년 1월 4일 취임한 강성익 지사는 취임 5개월만에 물러나면서 관선 임명단체장 시대로 회귀했고 제3대 제주도의회 역시 5개월 활동하다 해산됐다.

지방자치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30년이 지나서이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지방분권을 향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지방선거가 부활했다.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됐고 1995년 6월 27일 기초·광역 지방의회는 물론 도지사와 시장·군수 등 4개의 지방선거가 동시에 실시돼 새로운 지방자치시대를 열었다. 4대 지방동시 선거는 우리나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로 일컫는 지방자치제가 활짝 피어오른 해로 평가받고 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위대한 제주시대를 연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무소속 신구범 후보가 제주도지사, 민자당 고민수 후보가 제주시장, 무소속 오광협 후보가 서귀포시장, 민자당 신철주 후보가 북제주군수, 민자당 강태훈 후보가 남제주군수 선거에서 각각 당선됐다.

이후 4년에 한번꼴로 치러진 선거를 통해 지방정부의 행정·입법부를 구성하며 지방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풀뿌리 민주주의 명과 암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들의 실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 도서관·수영장 이용료, 상·하수요 요금, 기숙사 건립, 도로 개발 등이 지방의회에서 결정됨에 따라 주민들은 권리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찬반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주민들 스스로 예산을 편성해 제출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도 주민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등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행정서비스를 받는 수요자로 바뀌었다.

반면 고질적인 병폐도 초래됐다. 1995년 민선 1기 이후, 제주사회를 이끌어왔던 김태환·신구범·우근민 전 지사의 대립구도는 제주사회를 양분해왔다.

선거에서 줄을 잘 선 공무원은 서열까지 완전히 무시하며 승진대열에 합류하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는 '만년 주사' 또는 사무관에 머물거나 자의반 타의반 옷을 벗기도 했다. 공직사회는 물론 지역·학연·혈연까지 '내편' '네편'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4년마다 이어진 선거는 '승자 독식주의'행태로, 제주사회의 편을 갈라놓았다.

지방재정도 위기를 맞고 있다. 선심성 행사·전시성 축제를 기획하고 불필요한 공공시설물을 짓는 등 제주도 부채규모가 1조원을 넘고 있다.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도덕성이나 자질 논란, 지방의원들의 감투싸움과 그릇된 '상전 의식' 등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일부 주민들은 각종 개발사업에 대해 상식을 넘어선 보상을 요구하고 있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지역 공동체 분열을 초래하는 등 극단적인 이기주의도 민선자치의 병폐로 나타났다.

부만근 전 제주대 총장은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중앙정부의 획일적 개발전략에서 벗어나 자치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돼 지역이 가진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역문제를 진단하고 경쟁적으로 지역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자치단체장이 다음 선거를 의식,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를 올리기 위해 무분별한 개발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난개발 등 지역 환경이 파괴됐고 지역·집단 이기주의 성향이 나타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창민 기자

장정언 제4대 제주도의회 의장

"제주도정과 제주도의회가 제주발전과 도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1990년 12월 지방의회의원선거법이 제정되고 1991년 지방선거를 통해 제주에서도 제4대 제주도의회가 출범했다.

1961년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령에 따라 제3대 도의회가 해산된 지 30년 만에 지방의회가 출범한 것이다.

장정언 제4대 제주도의회 의장은 "당시에는 집행부와 도의회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하고 견제하는 관계가 유지됐다"며 "특히 도의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임에도 지역주민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쳤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특히 제주도개발특별법 처리와 4·3특별법 제정의 단초를 마련한 것을 대표적인 성과로 꼽았다.

장 전 의장은 "1993년 4·3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읍·면별 피해실태에 조사하는 등 4·3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대를 쌓았다"며 "특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은 국회·정부의 몫이라고 판단해 국회에 청원한 결과 여·야 만장일치로 4·3특별법이 제정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또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당시 도민정서가 매우 부정적이었다"며 "집행부와 공동으로 도민들을 만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피력했다.

장 전 의장은 "특별자치도 이전과 이후의 변화한 환경에서 도의원들이 지역갈등의 해결 및 조정자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도민들이 바라는 사항을 의정 활동에 반영하는 등 사고의 발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 "제주도정도 제주도의회를 지방정치의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며 "지방자치의 두 축이 제대로 굴러갈 때 제주발전을 이룰 수 있고 도민들의 삶도 윤택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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