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경제부장

요즘 TV를 보는 것이 살짝 두려워졌다. 이유는 두 가지다. 음식을 주제로 한 방송이 쏟아지다 보니 넘치는 식욕을 주체하기가 힘들어진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남자'도 하는 요리에 대한 부담이다.
 
처음 '음식'이 TV 메인 아이템에 등장한 것은 지역 소개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산품이나 지역명물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를 이용한 요리가 나왔다. '잘 먹고 잘 살자'며 우리나라 신 '맛 지도'를 그리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다음은 먹을거리 안전이 테마가 됐다. 먹고 살만 해지니까 다음은 건강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비위생적인 행위며 식재료 관리 부실 등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관심을 끌었다.
 
요즘은 이른바 '만드는 것'이 대세다. 한 눈에도 '음식 좀 할 것 같은'여성 요리연구가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나와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건강한 식탁을 만들던 것이 지역별 요리 대결을 넘어 '평범한 재료를 가지고 빨리 맛있게' 만드는 것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병영체험 프로에서 '취사병'을 특화하기도 했다. 
 
단순히 요리만 잘 해서는 안 된다. '예능감'도 필수다. '전문'의 기준도 무너졌다. 전업 셰프가 유명인을 넘어 연예인 수준의 인기 몰이를 하고, 이름 꽤나 알려진 연예인이나 만화가, 기자가 요리를 한다. 직접 재배하거나 채취한 것으로 제작진이 요구하는 요리를 만드는 미션도 수행한다. '셰프테이너'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부엌이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심지어 아빠의 육아 도전을 담은 프로그램도 차고 넘친다. 그래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그대로다. 한국의 사회 동향 보고서를 보면 국제사회조사프로그램(ISSP)의 자료기준으로 식사 준비, 세탁, 집안 청소, 장보기, 아픈 가족 돌보기, 소소한 집안 수리 등 6개 항목을 비교·조사한 결과 한국 남편들은 전 항목 하위 2~3위를 기록했다. 맞벌이 부부 4명 중 3명(74%)은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70%이상 전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사실 가사 남편·육아 아빠도 답은 아니다. 그래도 나누면 반이되고 또 배가 된다고 했다. 사람 사는 일은 알고 보면 다 그렇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