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각양각색의 백화가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의 계절이 되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나의 몸짓에서 꽃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호칭에 걸맞은 존재의 이유가 분명해 졌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호칭을 가지고 있다. 필자 역시 아빠, 교수, 장로, 원장 등 많은 호칭을 가지고 있다. 두 딸의 아빠가 된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육아에 참여했고, 주말에는 항상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고, 두 딸이 미국에 살고 있지만 매주 30분씩 화상통화를 하고 있어 두 딸과 좋은 부녀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아빠를 존경한다고 하니 아빠로서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존경 받는 아빠로 남기를 다짐해 본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꿨던 교수의 꿈이 1993년에 제주대학교로 오면서 이뤄졌다. 교수를 천직으로 여기면서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 줬으며, 그들의 행사에 참여해 소통을 많이 했다. 1999년 방문교수로 미국을 가게 돼 많은 학생들이 카드를 줬는데 기내에서 한 장 한 장을 읽어 가며 그들의 진솔한 고백에 큰 감동을 받았고, 생일에 학생들의 축하메시지가 적힌 롤링페이퍼를 선물로 받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고, 카톡으로 보내오는 학생들의 메시지는 지친 마음을 회복시키는 청량제가 됐다. 교수로서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면서 학교로 다시 돌아가 정년까지 학생들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해 본다.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는데 1986년에 서리집사가 되었고, 1989년에 안수집사가 되었다. 그 이후 장로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이리 저리 피해 다니다가 2014년에 장로가 됐다. 장로가 되면서 겸손, 섬김, 화해, 위로 등을 다짐했으나 아직도 내 안에 장로임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어 장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고 자평, 매일 매일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연구원장으로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회피하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올 것이라고는 기대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12월부터 연구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주도민과 우리 후손들의 '삶의 수준' 및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깊은 성찰과 정책대안을 제시하는데 나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각오로 일하고 있지만 많은 일들이 현재 진행 중이어서 자평할 수 없지만 임기를 마칠 때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본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라는 연설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불리셨고,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는 소신을 죽기까지 몸소 실천하셨으며,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야"라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故 이종욱 박사(1945-2006)는 나의 꽃이 되고 있다. '꽃'의 다른 구절인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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