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 제주대 사학과 교수·논설위원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과(謝過)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는 뜻을 지닌다. 유감(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을 뜻하는 단어다. 
 
1990년 5월24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貴國)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이 당시 번역에 따른 뉘앙스 차이로 오해를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키히토 일왕의 사과 문구인 '통석의 염' 표현을 둘러싸고 당시 우리 정부 국무회의에선 일부 장관들이 '통석'의 의미가 우리 국어사전에는 '몹시 애석하게 여김'으로 나와 있다는 점을 들어 진정한 의미의 사죄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었다. 가해자란 위치를 망각하고 마치 남 얘기하는 듯한 표현이란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오늘날의 동아시아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은 국가관계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때문에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자신의 견해만을 고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현재 우리는 전체 동아시아 역사의 차원에서 이웃국가와 공유하고 있는 역사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찰한다면 동아시아인들의 기억에 남은 아픈 역사의 잔재들과 마음의 앙금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더욱 큰 숙제를 남기는 것이다. 
 
즉 과거에 대한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가상적인 갈등이 경제, 문화, 정치적인 문제에서 별로 갈등이 없는 미래 세대의 현실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정치 계급이나 지배 집단은 그들의 역사적 해석을 일반 국민들에게 이식시키려 노력한다. 
 
실제로 그들 집단이 추정해 놓은 미래의 과제를 다음 세대를 이끌어나갈 후속세대에게, 적어도 나중에 영향력을 발휘할 사람들의 사고와 의지 속에 심어 놓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작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후 일본을 이끌어 왔던 정치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비록 그 태도의 유연성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본이 고통을 주었던 이웃 국가 와 그 피해의 당사자들에게는 단 한 번도 진심어린 사과를 표하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유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미국 방문 이틀째였던 지난 4월2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와 워싱턴DC 홀로코스트(대학살) 박물관 등 전쟁 추모시설을 잇따라 방문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주류 언론 등 각계의 압박에도 끝내 과거 일본의 침략 및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던 그의 행보에 대해 '위선'이며 '이중적'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찰스 랭글(민주·뉴욕) 하원의원은 USA투데이 기고문에서 "아베 총리가 미국을 방문한 지금이야말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때"라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인 랭글 의원도 또한 "역사적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아베 총리가 단순히 우리의 강한 동맹을 강조할 뿐 아니라 1945년 이전의 치유할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정의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본정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과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나, 오히려 진정성이 결여된 애매모호한 표현들에 대해 우리나라 정부가 지속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유감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적반하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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