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영국왕립건축사·논설위원

요즘처럼 살기 팍팍해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마저 암울할 때일수록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은 더욱 커진다.
 
6~70년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때 정치는 암울하기까지 했다. 수많은 선배들의 피와 눈물 섞인 노력으로 민주화를 이루긴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제대로 된 대통령 선거를 시작한 지가 20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고 일인 보스 정치를 벗어난 지도 1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에 모여 지도부 회의를 하는 모습들이 이젠 많이 익숙해졌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지금은 당 총재가 임기에 따라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지만 불과 10년 전만해도 개인의 당처럼 운영되지 않았던가. 
 
어쨌든 우리 정치가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고 점차 자리잡아 가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 상황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마당에 정치는 항상 그에 미치지 못하다 보니 우리의 마음은 이미 타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부는 경제 민주화를 슬로건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상황이 다급했던지 슬그머니 그것을 내려놓았나 보다. 미래의 경제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니 그 정도쯤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 지이다. 물론 단기간에 결실을 맺기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버티며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터져 나오는 주력 사업들에 대한 각종 문제들은 어떻게 설명할 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지난 정권 때 자원 사업에 대한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했던가? 마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는 것처럼 계몽하지 않았던가? 또한 4대강 사업은 어떤가. 물론 애초부터 의도가 불순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권 기간 내에 무리하게 추진했던 사업들이 그 다음 정권에서 결실을 보기도 전에 비리 문제로 얼룩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대안은 누가 세울 것인가? 솔직히 필자를 포함한 서민들은 미래에 대한 대안을 세울 능력이 없다. 현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세금을 납부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그것을 대신 해주길 기대하며 능력 있는 정치하시는 분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게 아니었던가? 선거에 이겨서 자리 보존하고 정권을 탈환하는 것이 당의 전술일 수는 있어도 전략으로 비춰져서는 곤란하다. 
 
여당도 마찬가지지만 야당이 유독 인기가 없고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판만 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도대체 정권이 바뀌면 무엇이 달라진다는 것인가? 전 정권의 치부만 드러내다 끝날 것인지 모르겠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삶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기회가 줄어들고 무한 경쟁이 시작되면서 무엇보다 삶이 많이 팍팍해졌다. 
 
더 이상 자녀들을 많이 낳지 않으면서 미래의 성장 동력이 떨어져간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 
 
한편 중소기업들은 유능한 신입 사원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서로의 눈높이가 다르고 사회의 불균형이 심화된 탓이다. 마치 남미처럼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아 연착륙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역사상 유례 없었던 이 어려운 시기에 정치인들은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민해야 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간판을 바꿔가며 이번 선거에 어떻게 이길 것인지를 고민하지 말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정치권에 던지는 과제이자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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