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 지역아동센터 제주지원단장·논설위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만물은 시련과 아픔 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라고 시인은 노래하지만,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스트레스는 지나치다. 
 
학교를 등지는 아이가 하루에 약 200명, 한해 6만∼7만 명에 이른다. 아름다운 꽃으로 자라야 할 아이들이 '성적경쟁'에 시달려 채 피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 간다면 그 나라는 그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그 학교와 가정은 뭔가 잘못돼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 성공의 코드는 '경쟁'이다. 사회안전망은 부실하고 패자부활의 기회는 없다. 
 
한번 무너지면 끝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 성공을 위한 경쟁 앞에 다른 모든 가치는 무릎을 꿇었다. 배려와 격려의 경쟁 따윈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경쟁은 '괴물'이 돼 점점 난폭하고 잔인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경쟁사회가 일러주는 아이들의 미래는 단 하나다. '일류대학에 가야한다. 대학졸업장이 직업을 결정하고, 직업이 삶의 질을 보장 한다' 그러니 부모인들 어쩌랴. 초조한 부모들은 아이들을 스케줄에 맞춰 바삐 돌린다. 경쟁력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부모들의 열의는 무쇠도 녹일 기세다. 뜨거운 열기에 녹아나는 건 아이들이다. 
 
사회의 가치는 부모자신에게만 작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더 엄격하다. 부모의 실패까지 아이의 성공을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작동하면 압력은 더 거세진다.
 
학교는 한 술 더 뜬다. 지난해 파장을 일으켰던 '성적순으로 밥 먹어' 초등학교 교실에서 흘러나온 선생님의 목소리는 '일그러진 경쟁사회'의 한 단면이다. 
 
밥 순서까지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찌 학업 경쟁의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물론 경쟁의 순기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쟁에서 이겼을 때는 성취 욕구가 충족되고, 많은 아이들에게 성공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작용은 스스로의 힘이든, 주변의 도움으로든 경쟁이 주는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오늘도 학원 숙제 때문에 밤 11시에 잠을 잔다. 시험지에 파묻혀 죽을 수도 있겠다. 온 사방 좋다는 학원만 바꿔서 다니는 내 인생. 학원은 스트레스를 공급하는 곳. 못된 어른들아, 우리는 스트레스 받아도 안 죽는 줄 알아요?'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일기다. 지금은 아이가 견디기 힘들다는 비명을 일기장에다 지르고 있지만, 아이가 점차 자라나면 어디다 대고 비명을 지를까.  '못된 어른들'이라는 원망이 못내 켕긴다. 
 
통계가 아이들의 아우성을 전한다. '자살률 1위' '행복지수'와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가운데 꼴찌수준이다. 
 
경쟁 없는 사회는 없기에 아이들을 경쟁 무풍지대에서 키울 수는 없겠지만 문제는 아이들의 자발적의지가 아니라 강요에 의한 경쟁이라는 점이고, 그 강도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지금 아이들의 불행하다는 소리는 미래사회 메아리로 돌아온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행복을 화두로 올려놓자. 아동기에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고 온몸으로 놀고 활짝 웃어본 아이들은 행복을 만드는 DNA를 갖게 된다. 
 
'어린이 행복선언'의 첫 요구가 "마음껏 신나게 놀고 나면 행복해요. 놀 곳과 놀 시간을 주세요"이다. 
 
과한 요구가 아니지 않은가. 이 눈부신 5월이 가기 전에 아이들을 경쟁의 압박에서 해방시켜주자. 아이들의 행복은 이 사회 어른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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