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태림 수필가·논설위원

5월에는 축하하거나 기념하는 날이 많다. 근로자의날에는 근로자들이,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이, 어버이날에는 부모님들이, 성년의 날에는 젊은이들이, 이처럼 5월의 기념일에는 그 대상이 주인공이 돼 주변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축하나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지난주 신문 보도를 보면, 축하나 대접보다는 편치 않은 스승의날을 맞는 선생님들이 많은 모양이다. 스승의날을 끼고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를 떠난 학교가 많은가 하면, 촌지나 선물을 감시하는 당국의 눈길이 매서워 학부모 방문이나 선물 부담으로 임시 휴교를 하거나 체험학습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날이 요즘 들어선 선생님이 마음앓이를 하는 날이 됐다.
 
스승의날을 맞아 선생님에게 자그마한 선물이나마 하려는 학부모와 선물을 받지 않으려는 선생님들 사이에 밀고 당기는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촌지나 선물 수수에 대한 교육당국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일선 교사들은 조그만 선물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학부모들은 '그래도 스승의날인데…'하며 선물을 보낼 방법을 찾아 머리를 짜내고 있단다.
 
학부모의 촌지나 선물에는 선생님의 노고에 보답하는 정성이 깔려있겠지만, 더러는 자기 자녀를 위하는 이기적인 목적도 숨어있을 수 있다. 그래서 '잘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보은보다는 '잘 부탁합니다'라는 청탁 쪽으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날이 학기초인 5월이라는 게 더더욱 청탁 쪽으로 색깔을 진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의견처럼, 스승의날을 학년말로 옮기는 것이 선생님을 편하게, 그리고 제대로 대접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학기말 시험도 다 끝난 1월쯤으로 스승의날이 옮겨진다면, 청탁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보은만 남으니 당당한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학부모의 선물도 청탁이나 뇌물의 의도가 아닌 순수한 정성으로, 받아드는 선생님의 마음을 가볍게 할 것이다.
 
1579년 전라도 담양땅. 면앙정(仰亭)에서는 송순 선생의 과거급제 60년을 맞아 많은 제자들이 축하연을 열었다. 금방(金榜)에 이름이 오른 지 60년인 회방연(回榜宴)이다. 40년간 높은 벼슬 골고루 지내고 하향(下鄕)한 복 많은 노정객이며 대문인(大文人)인 면앙정 송순은 87세의 나이도 잊은 채 대취했다. 송강 정철, 서하당 김성원, 고봉 기대승, 제봉 고경명, 백호 임제, 사암 박순 등 당시 조선 중기를 주무르던 기라성 같은 제자들의 올리는 술잔을 마다할 수 없었다. 인사불성이 된 스승을 제자들은 손가마를 만들어 스승을 태우고 정자 아래로 내려와 남여(藍輿)에 모신 후, 고관대작의 신분도 스스로 내려놓고 가마꾼이 돼 댁까지 서로가 번갈아 모셨다. 당시로서는 실로 파격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몇년 전부터 담양군에서는 이 아름다운 연회의 장면을 축제로 승화시켜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주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조금 지난 제자들이 졸업반 담임들을 모시고 사은회를 열었다.
 
각처에서 당당히 제몫을 하고 있는 제자들, 인생의 절정기인 50대에 접어든 제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꿈을 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분위기는 저절로 33년 전 과거의 교실로 돌아갔다. 사제 간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너나없이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들은 차려놓은 여러가지 질 높은 음식보다도 더 좋은 안줏감이었다. 푸고 퍼도 샘샘 솟아나는 샘물처럼 학창시절의 추억은 끝이 없었다. 꽤 긴 시간이었는데도 아쉬움이 남아 자리를 옮겨 노래와 춤으로 모자람을 채웠다.
 
제자들은 적잖은 금액의 상품권과 오체투지(五體投地)의 큰절을 늙은 스승님들께 올렸다. 청탁이 아닌 보은의 선물이라서 부담없이 고마웠다. 우리들도 맞절로 정성을 받아들였다. 즐겁고 기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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