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과학고 1학년 강성구

재봉틀의 말
 
비 오는 날, 어머니는 재봉틀 뚜껑을 열었다.
북집을 툭 끼워넣어 뱅뱅 돌리다 보면
70년 전 오래 묵었던 집안 내력들이
드르륵 드르륵 내게 말을 걸어온다.
열네 살에 물질해서
삼천 원을 주고 산 재봉틀 앞면에는
'싱가'라는 갑골문자 같은 삶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할머니가 떠나시고
재봉틀만이 그 자리를, 그 그늘을 박음질한다.
처음이 어머니였으므로
끝도 어머니로 가는 길
어머니는 재봉틀로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너덜너덜해진 내 교복 바지가
드르륵 드르륵 누벼질 때면
스탠드 불빛 아래서
행간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바보 같았다.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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