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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뫼백일장] 고등학교부 산문 부문 최우수제주고 3학년 김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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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25 (월) 17:40:20 | 승인 2015-05-25 (월) 17:44:59 | 최종수정 2015-05-25 (월) 17:58:59
   
 
     
 
촉새할망
 
퀘퀘한 구린내, 꼽추처럼 불룩 굽은 등, 질질 흘리는 침, 초점 없는 사시. 내가 옆집 촉새할머니에게 이런 평가를 내린 8년 전. 내가 촌 자락으로 이사를 갔을 때였다. 나의 낡은 새 집과 촉새 할머니의 집 사이 거리는 겨우 5미터밖에 안 되어 보였고 막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돌담이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촉새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셨다. 관절이란 관절은 전부 풍이 오셨는지 손을 벌벌, 발을 달달 떠시고 입은 말하려 할 때마다 돌아가는 바람에 언제나 입가에 침이 마르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신나게 집으로 뛰어오면 촉새 할머니는 어떻게 알았는지 길가에 드러눕고선 나에게 까딱까딱 손짓을 했다. 나는 바로 기분이 상해 옴찔거리며 할머니에게 다가가면 그 관절이 울룩불룩 돋은 뼈 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아채고선 영 못 알아먹을 말들만 쏟아내는 것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바로 손을 빼려하면, 그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으로 더욱 꽉 조였다.
또 제주도 할망들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이웃집 깜짝 방문'인데 이 특성에 역시 촉새 할망도 빠지지 않고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다. 내가 TV를 볼 때도 문을 벌컥. 밥 먹을 때도 벌컥. 심지어 샤워할 때도 문을 벌컥 열기 일쑤였으니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어 촉새할망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촌 생활을 하루하루 연명하여 촉새 할머니에 대한 원망만 적립하던 나는 갑자기 우리 집 복실이도 안 걸린다던 여름 감기에 지독하게 걸리고 말았다. 이 감기란 놈이 어찌나 끈질기고 강했던지 손가락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열에 달뜬 채 눈꺼풀만 바르르 떨게 만들었다. 쏟아지는 잠과 걱정들 가운데에서 나는 잘게 기침만 뱉었다. 코알라처럼 열심히 자고서 일어나보니 이불과 옷이 쿱쿱하게 젖어 들어갔고 하루 종일 말하지 못했던 입안에서는 단내가, 머리는 기름과 땀으로 떡이 져서 지짐을 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간신히 입을 쩍 벌려 갈라지는 목소리로 크게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적막감만 되돌아 올 뿐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건가. 나는 말없이 몸을 일으켜 세워 목욕탕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그때는 이 몸을 씻어 상쾌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어서 화장실 문고리를 잡았는데 어찌나 몸이 달떴는지 문고리를 잡은 손끝에서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찝찝한 옷들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고 온수를 틀어 몸을 씻어내었다. 고개를 숙이고 온수를 맞으며 몸을 맡기고 있으니 뜨거운 몸이 풀리는 기분에 웃음이 자꾸만 비집고 나왔다. 샴푸통의 머리를 누르자 내가 뱉어내던 가래침 같은 묽은 샴푸가 주륵, 흘러나왔고 그걸 머리에 잔뜩 부벼 거품을 내었다.
그렇게 한참 몸을 씻고 알몸으로 나오니 시원한 공기가 몸에 닿는 촉감이 너무 좋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며 몇 발자국을 걸어 나왔다. 그러다 갑작스런 현기증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더니 너무 시원했다. 바닥에 엎드려 숨을 색색 몰아쉬니 몸이 갑자기 무거워져 한 걸음도 뗄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무너진 몸을 내버려두자고 마음먹은 나는 그대로 꼴까닥.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는 마룻바닥도 아니었고, 타올 하나만 간신히 걸쳤던 알몸도 아니었다. 마룻바닥이 아닌 거실이었고 젖은 타올이 아닌 새로 꺼낸 듯한 이불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는 채 멀뚱히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니 촉새 할머니네 맞은편에 살고 계시는 이장님네 아주머니께서 부엌에서 생강차를 끓이고 계셨다. "일어났어?" 아주머니는 내 기척을 느끼시고 생강차를 한 잔 주셨다. 나는 얼떨결에 받으며 예예, 하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를 타박하셨다. 감기에 씻고 알몸으로 누운 미련함은 대체 뭐냐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은 입에 뜨거운 생강차만 조금씩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가서 촉새할망에게 고맙다는 인사드려야 한다."
"네?"
여기서 왜 촉새할망이 나오는 건가 싶어 눈살을 찌푸렸더니 내 표정 변화를 알아차리신 건지 아주머니께서는 혀를 끌끌 차셨다.
알고 보니 내가 이렇게 무사할 수 있던 건 촉새 할머니 덕이었다. 촉새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집 문을 벌컥 열고 깜짝 방문을 하셨다가 내가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반대편 이장님 댁에 가서 아주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촉새할망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겠니."
"......"
"가끔 그 할망이 너 붙잡고 주저리주저리 말해도 너무 미워하지 말구."
그 할망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입이 돌아가서 말이 새는거야. 아주머니는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가셨다.
아, 촉새할망이 이제껏 왜 그랬는지, 왜 나를 붙잡고 주절거렸는지, 왜 문을 맘대로 열고 들어오는지를 깨달았다. 할망은 나를 아껴주었던 것인데 나는 할망의 외모와 결점들만 보고 평가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그 이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할망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못 알아들을 이야기를 했고, 우리집 문을 열었지만, 나는 더 이상 촉새 할망을 피하지 않았다. 촉새할망과 나의 사이에는 더 이상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돌담도, 5미터의 거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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