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완 경기대 관광개발학과 교수·논설위원

마이클 포터(Michael E. Porter)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석좌교수로 '현대 전략 분야의 아버지'라 불리는, 명실 공히 경영전략의 세계 최고 권위자다. 포터의 17개 저작 중 「경쟁전략」(1980), 「경쟁우위」(1985), 「국가 경쟁우위」(1990) 등 3부작은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점점 치열해져만 가는 경쟁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를 제시하는 바이블로 알려져 왔다. 
 
대학에서도 거의 모든 전공에서 경쟁우위 전략은 필수 강좌가 됐고, 지난 25년 동안 우리는 자의이든 타의이든 마이클 포터를 교주로 신봉해야 했다.
 
이로부터 경쟁이라는 단어는 생존을 위한 기본이 됐다. 대학 입학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의 경쟁에 내몰렸고,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야만 했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합니다' 1995년 TV에 등장한 삼성그룹의 기업PR 광고 카피이다. 일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무한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은 낙오이자 도태이다. 
 
십 몇 년이 흐른 후 한 개그맨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일갈했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하루하루가 경쟁의 연속이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이면서 회원국 평균의 2.35배에 이른다. 이는 국가적 환란의 시기로 표현되는 IMF 시기의 1998년 18.4명보다도 훨씬 높아진 것이다. 
 
경쟁의 교주인 포터 교수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무방비로 경쟁에 내몰렸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포터 교수는 2011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소비자의 가치, 기업의 가치,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가 상호 조화를 이루는 기업가 정신이 요구된다는 것으로 기업과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개념이다. 기업 경영의 맥락이지만 경쟁이 아닌 상생을 강조하는 것으로, 승자독식의 경쟁우위를 강조하는 것과 비교하면 교주가 개종을 한 것이다. 평신도가 개종을 해도 난리가 날 일인데. 
 
사실 기업가 정신의 바탕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있어 왔고,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운명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쨌든 교주의 세상을 보는 눈은 말 그대로 혜안이라 칭송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 창출이고,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이 세상을 복되게 할 것이라고 믿는 세력들이 여전히 아주 많다. 교주가 개종을 했는데 우매한 광신도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사실 포터의 개종 교리인 공유가치의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녹아들고 있다. 일등을 부르짖던 삼성의 '두근두근 투머로우' 광고는 '국민과 소통하고 고객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친근한 삼성'을 보여주고 있고, 많은 기업 광고들은 저소득층이나 다문화 가정, 저개발 국가의 문제들과 공유하는 상생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광고의 사례들은 이제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넘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야 함을 나타내는 실례이다. 
 
영국의 진보적 사회학자인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는 '글로벌 기업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텅 빈 껍데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죽어가는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서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네 가지 힘 즉 국가, 시장, 기업, 시민사회 사이의 계속적인 긴장이 존재하는 경제를 지지한다'고 했다. 
 
크라우치가 바라는 좋은 사회는 포터가 20년 만에 개종해 선언한 경쟁이 아닌 상생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상생하는 사회는 따뜻한 자본주의, 인본적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맘몬의 노예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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