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이용원 김재명씨

일을 배우기 위한 수단에서 '습관'으로 자리
제주 아침 여는 '제민일보'로 단골도 만들어
 
▲ 작은 아버지로부터 대를 이어 중문이용원을 운영하는 김재명씨는 대를 이어 '제민일보'도 25년째 구독하고 있다. 김대생 기자
중문이용원에는 '손때'가 반질반질한 것이 두 개 있다. 같은 선반을 사용하는 낡은 이용 가위와 '제민일보'다. 하나는 수족이 된지 벌써 36년이 다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25년째 세상과 만나기 위해 수십 번 손을 대는 존재다. "없으면 뭔가 빠진 것처럼 허전해"하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인 김재명씨(60)는 군 복무를 마치던 해인 1979년 제주에 왔다. 이용원을 하는 작은아버지를 따라 '제 2 고향'인 제주에 정착했던 터라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사람들 말을 알아듣기도 어렵고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한 몇 년 입을 닫고 살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개인 서비스업을 하려면 어떻게든 제주를 알아야 했다. 작은아버지의 하루를 살피면서 발견한 것이 '신문'이었다. "몇 마디를 하더라도 말이 통했던 손님은 어떻게든 다시 찾아 오더라"며 "처음에는 일을 배우기 위해 읽던 것이 지금은 습관이 됐다"고 웃었다.
 
작은아버지로부터 이용원을 이어받으며 '제민일보'도 넘겨받았다. 김씨는 "한창때는 신문도 서너개 받았지만 경쟁업체가 늘어나면서 뭐든 줄여야 했다"며 "그래도 제민일보만큼은 지켰다"고 짐직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 단골 중에는 '제민일보'가 맺어준 인연도 꽤 된다. "아들 결혼식에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버지로 만들어드리겠다고 했더니 몇 핸가 지나서 손자 손을 잡고 온 고객도 있었다"며 "이번엔 멋진 할아버지가 되게 해달라고 해서 한참 웃었다"는 귀띔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감귤값이 안 좋을 때면 뜸하고, 가격이 좋으면 안부차라도 몇 번 더 들리는 사정도 신문을 통해 살폈다. 요즘은 지역에 땅이나 집 나온 것이 없나를 묻는 낯선 얼굴이 자주 찾는다. "제민일보에서 봤어. 이쪽 부동산이 가격이 좋다고 하더라고."
 
"이용원에만 있다보니 사실 세상을 살필 기회가 많지 않아. 그렇다고 넋놓고 TV만 볼 수도 없고. 이렇게 제민일보 때문에 다들 나를 여기 토박이로 아니 내게는 최고의 파트너지"
 
그런 김씨가 당부한 것은 단 하나 '처음처럼'이다. 김씨는 "25년을 봤으니 앞으로 25년을 보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며 "앞으로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소식을 많이 부탁한다"고 말했다. 김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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