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위원

얼굴을 숨겨주는 가면이 TV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복면가왕' '복면검사' 등 가면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보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시청자들을 붙잡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가면을 쓴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주기도 하고, 자신 안에 잠자는 또다른 나를 끄집어내기도 한다"고 분석한다. 역으로 보면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스타 선호현상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실력보다 밖으로 드러나는 스타의 겉모습으로 저울질하는 불편한 현실의 풍자라고 할 수 있다.
 
TV에 등장한 가면 콘텐츠를 놓고 여러가지 해석을 내리지만 가면은 본래 사냥과 주술적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원시시대 이래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냥을 할 때 위장술과 싸움터에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는 위협용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또 사람에게 역병과 액운을 몰아내거나 망자의 영혼불멸을 기원하는 종교적 주술의식에도 가면이 이용됐다. 우리나라에서 나무와 종이 등으로 만들어 얼굴에 썼던 '탈'도 가면과 같은 역할을 했다.
 
가면은 그 본래 의미와 달리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거짓과 위선을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의 대표적 사례가 만 3~5세 무상보육을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벌이는 정부의 가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구분없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는 것은 물론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들에게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사실상의 의무교육 실현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누리과정은 2012년 3월 만 5세에 적용됐지만 2013년 3월부터 만 3~4세까지 확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재원 부담을 놓고 올해 정부와 전국 시·도교육감이 충돌하면서 부모들이 보육대란을 걱정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시·도교육청이 만 4~5세 보육료 전액을 부담하고, 만 3세의 경우 시·도교육청 30%와 지자체 70%로 재원을 각각 부담하면서 누리과정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 과정에 정부가 올해부터 지자체가 부담하던 70%를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하면서 올해 예산안에 보육료 지원예산을 편성하지 않아 시·도교육청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다행히 양측이 한발씩 양보하면서 정부가 30% 가량을 목적예비비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키로 하면서 보육대란이 한숨을 돌렸다.
 
이처럼 올해 우려됐던 보육대란이 급한 불은 껐지만 내년부터 부모들의 걱정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달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2016년부터 만 3~5세 어린이집 보육료를 시·도교육청이 강제로 편성해야 하는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자 전국 시·도교육감이 지난달 31일 편성 거부를 결의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다시 불거지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의무지출경비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하지 않을 경우 2017년 예산편성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했지만 시·도교육감들은 지방교육재정난 심화를 이유로 거부했다. 시·도교육감들은 무상보육은 국가책임이라며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가 아닌 중앙정부의 의무지출경비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만 3~5세 무상보육은 지난 대선 때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를 선언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복지공약이다. 당연히 국가와 대통령이 공약 실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제 와서 "국가가 누리과정을 책임진다는 것이 예산을 지원한다는 뜻은 아니"라던가 "교육청이 누리예산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이상한 논리로 교육청에 책임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무상보육은 단지 지출되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다. 그러니 정부도 당장 급한 불을 끄자고 책임회피에 급급하기보다 부족한 재원을 확충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 복지 확대라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뒤에서 꼼수를 써서는 안된다. 위선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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