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성 논설실장 겸 서귀포지사장

10년 가까이 제주사회를 엄청난 갈등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사업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지난 1993년 12월 제156차 합동참모회의에서 신규 소요 결정이 내려진 다음 2002년에 화순항, 2005년에는 위미항에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이 좌초됐다. 그러다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회가 회장 등 찬성측 주민 87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총회를 개최, 해군기지 유치를 박수로 통과시키기에 이른다. 1500여명의 전체 주민 중 10%도 안되는 주민이 내린 결정이 오늘날 갈등과 대립의 씨앗이 된 것이다.
 
반면 강정마을회는 같은 해 8월20일 주민 725명이 투표를 실시한 결과 반대 680표, 찬성 36표, 기권 9표로 강정해군기지 유치 반대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그 해 12월말에 2008년도 해군기지 예산 174억원을 기어이 통과시켰다. 다만 국회는 "제주해군기지 사업예산은 민·군복합형 기항지로 활용하기 위한 크루즈선박 공동활용 예비타당성 조사 및 연구용역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제주도와 협의를 거쳐 집행한다"는 부대의견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8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개최, 제주해군기지를 15만t 크루즈선박 2척 동시 접안이 가능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써 제주해군기지의 명칭도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으로 바뀌게 됐다. 정부는 또 2012년 9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통해 2021년까지 37개 세부사업에 1조771억원을 투자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지역발전계획을 확정했다. 이는 특별법을 제정해가며 89개 사업에 18조8000억원을 투자하는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규모다.
 
하지만 이 사업마저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아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들 37개 사업 가운데 서귀포의료원 현대화사업과 관광미항 주변지역 교육환경개선 현대화사업 정도만 완료됐을뿐 거의 모든 사업이 중단됐다. 표면적으로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역발전계획에 따른 사업까지 거부한 때문이지만 정부의 의지 미흡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지역발전계획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반면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사업은 오는 12월말 완공계획에 맞춰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제주도와 서귀포시에 따르면 관광미항 건설공사 공정률은 지난 5월말 현재 항만공사 89.71%, 육상공사 61.02% 등 총 82%로 공기를 무난히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관광미항이 완공되고 나면 강정은 어떻게 될까. 
 
주민들이 찬·반으로 갈린 강정마을은 지역공동체가 파괴된지 이미 오래다. 지금까지 기소된 형사사건만 400건 가깝다. 전 마을회장을 비롯한 주민과 외부 활동가 등 7~8명 정도가 실형을 사는 등 종료된 사건 외에 재판이 진행중인 사건이 150건을 웃돈다. 벌금도 결코 만만치 않다. 현재 납부된 액수가 2억6000만원, 고지된 금액이 2400만원에 이르는가 하면 재판이 끝나면 2억원 정도 추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밖에 시공사가 공사를 방해했다며 주민을 상대로 제기한 1억원대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끝나지 않았다. 
 
이와 함께 벌금을 대납하기 위해 강정마을회가 올해 1월부터 마을회관을 매각하려 했지만 정족수 미달로 세차례나 논의도 못해보고 무산된 것 또한 사법처리 못지 않게 주민들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일이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지역발전계획을 추진하는데 강정주민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역발전계획이 강정은 물론 제주도민과의 약속이라는 점 외에 단지 관광미항을 추진하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당초 계획대로 추진해야만 한다. 또 원희룡 지사는 한때 강정주민들에게 약속했던 '민·군복합항 진상규명'을 이행, 최소한 주민들의 한이라도 풀어줘야 한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