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한달]
잇따른 방역 실패·신고의식과 삼성서울병원 과신·병원정보 비공개
'우려' 때문에 오히려 '공포' 확산…방역체계 개선 시급

한달 전 1명으로 시작됐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162명으로 늘어나며 전국이 혼란 상황에 빠진 배경에는 세차례의 방역 실패, 두번의 과신, 한번의 고집이라는 정부의 실책이 있다.  
 
허술한 역학조사로 인한 잇따른 방역 실패는 슈퍼 전파자를 양산했으며 환자의 자발적 신고와 병원의 자체 통제에 대한 과신은 사태를 더 키웠다.
 
사태 초반 국민의 우려를 막기 위해 병원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의도와 정반대로 공포의 확산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 허술한 역학조사·잇따른 방역 실패 
 
그동안 중동 지역 밖의 국가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사례가 적지 않았지만 한국처럼 많은 환자가 발생한 전례는 없다.  
 
해외와의 왕래가 잦은 만큼 나라밖의 전염병이 국내에 들어올 수는 있다. 문제는 전염병 환자가 발생한 뒤 확산을 막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세차례의 고비에서 그때마다 확산을 막지 못한 방역당국에 있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인 1번 환자(68)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달 20일로 환자 발생 후 1주일간 감염 전파를 막는 일이 중요했지만 그러기에는 방역당국의 방역체계가 너무나도 허술했다.  
 
첫번째 방역 실패는 방역당국이 1번 환자와의 밀접접촉자 반경을 지나치게 좁게 잡았다는 데 있다.  
 
1번 환자와 평택성모병원에서 같은 병실(2인실)을 쓰던 동료 환자들과 1번 환자를 진료·간호한 의료진을 대상으로 역학조사를 진행해 자가격리 혹은 시설(병원) 격리시켰지만 대상자 폭이 지나치게 좁았다.  
 
방역당국이 첫 환자 발생 후 전면적인 재조사에 착수한 28일까지 9일간 발생한 환자는 1번 환자 외에 6명뿐이었다. 하지만 재조사를 통해 같은 병동과 같은 층 등 병원 전체로 방역망을 넓혔더니 환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재조사 후 평택성모병원 감염자로 확인된 환자는 30명이나 되며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다른 병원을 거쳤다.
 
방역망이 좁은 것도 문제였지만 지나치게 느슨했다는 점은 더 큰 실책이었다. 10번 환자(44)처럼 멀쩡하게 1번 환자와 같은 병실에 있었음에도 방역망에 걸러지지 않아 중국 출장까지 간 사례도 있었다. 
 
두번째 방역 실패는 방역당국이 첫 유행지인 평택성모병원에서의 조사를 확대해 대대적인 재조사를 실시하면서 나왔다. 
 
첫 환자 발생 후 9일이 지난 시점에 재조사가 시작돼 너무 늦기도 했지만 이 때도 방역망은 여전히 느슨했다.  
 
35번 환자(38)만 해도 자가격리 대상에서 빠져 병원과 다중시설을 돌아다닌 사실이 뒤늦게 발견되기도 했다. 1번 환자에 이어 슈퍼전파자가 된 14번 환자는 방역망 밖에 있을 때 이미 여러 병원을 방문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만 14번 환자를 통해 발생한 감염자가 80명이나 된다.
 
세번째 실패는 삼성서울병원에서의 느슨한 접촉자 관리에 있다. 그로 인한 추가 환자 발생 우려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병원에서 감염됐지만 그동안 통제 밖에서 활발하게 일상생활을 한 사람은 5명이나 된다. 이 중 137번 환자(55)는 삼성서울병원 이송요원으로 2~10일 아흐레간 근무를 한 바 있어 또다른 슈퍼전파자가 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 환자 신고 믿었다가 확산세 못막고, 삼성서울 과신했다 유행으로 번져
 
방역당국이 1번 환자의 존재를 늦게 알아낸 데에는 환자 개인이나 이 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이 메르스 의심 상황을 방역당국에 제대로 알리지 않았던 상황이 있다.
 
1번 환자가 증상이 발현한 이후 확진 판정을 받기 전 열흘 가까이 여러 병원을 전전한 것은 메르스가 지금처럼 확산된 첫번째 원인이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중동의 방문지들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고 의료기관의 보고도 한차례를 빼고는 없었다.
 
10번 환자도 메르스 환자와의 접촉 사실을 알리지 않고 11일간 회사에 출근하는 등 일상 생활을 했지만 방역당국은 이 환자가 중국 출장을 간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환자 혹은 의심환자와 의료진의 신고 의식 부족이 환자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지만 시민들의 신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부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다.
 
메르스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무시했고, 환자와 의료진의 신고 의식이 있어야만 제대로 작동하는 신종 감염병 인지 체계를 방치한 실책이 방역당국에 있는 것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신고를 강제하는 법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적용돼 벌금형이 내려지는 경우는 드물어서 국민과 의료진의 신고 의식을 높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두번째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와 관련해서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에 접촉자 통제의 상당부분을 의존한 것은 과신으로 상황이 악화된 또다른 사례다.
 
방역당국은 14번 환자와의 응급실 밀접접촉자를 파악하는 과정을 삼성서울병원에 사실상 맡겼다.  
 
방역당국은 병원측으로부터 응급실 접촉자 중 내원 환자 명단을 받아 밀접접촉자로 분류해 자가격리했지만 보호자와 병문안자는 사각지대에 방치했다.
 
내원 환자와 함께 응급실에 있던 보호자나 문병자 등은 자가격리에서 빠졌고, 심지어는 이보다 약한 수준의 관리인 능동감시 대상자에도 들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137번 환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파견 근무 중인 용역업체 직원이었지만 삼성서울병원도, 방역당국도 이 환자가 메르스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9일간이나 놓쳤다.
 
 
◇ 병원 비공개 고집하다가 여론 떠밀려 공개…'불통'이 공포 키워
 
방역당국은 사태 초반 병원 명단을 공표하지 않았다. 명단이 공개되면 우려가 지나치게 커질 것이라는 이유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명단의 미공개는 오히려 사회 전반의 공포를 확산시키는 더 큰 부작용을 낳았다.  
 
당국이 병원명단을 알리지 않는 사이 지난달 29일부터 '어떤 환자가 어떤 병원을 갔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SNS를 타고 떠돌았다.  
 
"밖에서는 양치도 하지 마라", "해외에서 우리나라가 긴급재난 1호 상황이라고 실시간 뉴스 뜨고 있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까지 퍼지자 당국은 유언비어 유포자를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부 병원명을 공개하고 병원명 공개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가 된 뒤인 지난 7일 방역당국은 방침을 바꿔 병원명단을 공개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병원 공개 요구가 거세지기 시작한 지난달 29일부터 병원명단이 공개되기 전날인 6일까지가 증상 발현일인 메르스 환자는 모두 56명이나 된다. 병원명단 공개 판단이 빨랐다면 이들 중 상당수는 발병을 피하거나 발병이 됐더라도 조기에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방역당국은 메르스 환자와의 '밀접접촉자' 판단 기준에 대해서도 한동안 '2m 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고수하다가 더 먼거리에서 짧은 시간 접촉한 환자가 발생하자 슬그머니 기준을 넓히고 있다.  
 
사태 초반 이런 기준에 집착하지 않고 촘촘하게 밀접접촉자를 찾아냈더라면 확산세가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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