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휴 전 초등학교장·논설위원

"메르스 환자가 완치되고 모든 게 정상화된 다음에는 우리가 메르스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슬쩍 흘린 말에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뭘 고마워해야 하는데", "취했나?" 나는 친구들을 달랬다. "내 이야기는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가 반성할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거야" "무슨 반성?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생각 좀 해봐. 이번 메르스 사태도 당초에 확실하게 잡았으면 이런 대형 참사로 확대될 게 아니었잖아?" "그래, 그건 맞아" 누군가의 맞장구가 나왔다. 
 
메르스 때문에 우리가 당한 불안과 고통, 그리고 국내·외적으로 입은 피해는 수백조원이 될 것이다. 세계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는 그동안 쌓아올린 공든 탑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렸다. 그뿐인가. 살아서도 번호로만 불리던 메르스 환자가 사망했을 경우에는 씻지도 못한 채 비닐백에 담겨 장례절차도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직행했다. 그곳에서도 거절당하다가 다른 분들 화장이 끝나는 오후 5시 이후에나 겨우 화장을 할 수 있었다. 얼싸안고 울어도 시원찮을 그 가족들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리비히(Liebig)의 법칙'이 있다. 다른 조건들이 아무리 좋아도 식물의 성장에 필수적인 어느 한 요소가 부족하면 그 식물은 부족한 그 한 요소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것. 최소율의 법칙이라고도 하는 이 법칙은 사회의 많은 현상에도 적용된다.
 
모든 걸 갖춘 일류병원도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 한 사람을 놓치면서 결국은 부분폐쇄까지 당했으니, 작은 구멍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리비히의 최소율의 법칙이 적용된 셈이다. 실책은 그 병원만이 아니었다. '2m 밀착접촉만 안 하면 된다' '공기전염은 없다'느니 하다가 결국은 세계보건기구의 방문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의료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씁쓸한 기억이지만 메르스 사태를 '복기(復棋)'해보면 우리가 허술했던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메르스 참사는 우리의 극성스러운 문병 관습, 일류·대형병원만을 선호하는 진료관습이 만들어낸 측면도 없지 않다. 
 
다시는 그렇게 허술한 방어막이 뚫리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작은 '구멍'들을 촘촘하게 메우고 보완해 나가야 할 때이다. 술자리에서 술잔 권하지 않기, 집단으로 찾아가는 극성문병 자제, 포괄간병인 제도 확대, 병원의 위생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바이러스 등의 전파를 원천적으로 막는 자외선 살균로봇 등도 수입 또는 개발해야 한다.
 
그동안 땀 흘리며 수십 일을, 밤낮없이 꼼짝 못하고 지새운 의료진에게도 진정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제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서 이들 의료진과 종사자,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고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7월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필자는 메르스 사태를 되돌아보면서 엉뚱하게도 65년 전의 '그 날'을 떠올리게 된다. 
 
6·25가 터져 온 국민이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정부는 "용감한 우리 국군이 해주(海州)시를 점령했으며, 일부는 38선에서 20㎞까지 북진하고 있습니다"라는 황당한 방송을 내보냈다. 그때 서부전선의 17연대는 옹진에서 퇴각 중이었다.
 
이 참담한 메르스 사태의 와중에서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북녘땅 세력의 위협이다. 메르스보다 훨씬 무서운 것. 만에 하나 김정은의 오판으로 휴전선이 터지거나 핵공격이 현실화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정말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터진다면, 그리고 오늘날 우리 정부의 수준을 함께 생각하면 아찔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정부가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놔야 한다. 좀 더 치밀하면서 국민들 가슴에 와 닿는 대응책을 보여주고 우리를 안심시켜주기 바란다.
 
실패를 거울삼아 도약한다면 그 실패가 자산이 되지만, 실패를 하고도 교훈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낙오하는 국민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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