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혹은 절망의 끝

 사위는 시방 막막하다. 주위에 제 빛을 내는 것이라곤 어둠뿐이다. 어둠만이 자신의 몸체에 그 검은빛을 덧칠하며 서서히 모종의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권총을 꺼내 들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차가우면서도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독특한 감촉. 권총의 매력은 그것이다. 총구가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그 긴박함. 그는 총구를 서서히 자기의 관자놀이로 가져갔다.

 한순간이다. 단 한순간 집게손가락의 근육에 조금의 힘만 준다면 만사가 끝이다. ‘결전의 날’이라고 제목을 붙인 유서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있을 것이고 이제 남은 길은 이것뿐이다.

 탕! 단 한발의 총성. 그리고 그 총성을 가리려는 듯 지독한 어둠만이 침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번의 콩쿠르 상 수상. 유럽과 아메리카의 외교관으로, 국제 연합의 대변인으로 치열한 한 생애를 살았던 로맹 가리는 1980년 파리에서 1년 전 자살한 아내의 뒤를 이어 자살했다.

 한 소설가의 죽음은 또 다른 드라마를 부르는 것인가. 아니면 자살이라는 폭력적 생애의 마감에 대한 일반인들의 연민인가. 어쨌든 로맹 가리는 프랑스 소설 특유의 쉽게 해독할 수 없는 향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한동안 프랑스 소설에 대한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페루의 한 해변.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새들이 찾아오는 그 곳. 거기에 한 사내는 조그만 카페를 차려놓고 오지 않는 시간을 기다린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바의 전투 현장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 종말을 고하려는 듯 안데스산맥 발치의 페루 해변으로 몸을 숨겨 버린 마흔 일곱의 그 사내.

 어느 날, 사육제의 마지막 날 그 사내가 지키고 있던 해변에서 한 여인이 바다로 뛰어든다.

 사육제라는 일상의 일탈 속에 휩싸여 흑인과 몇몇 사내들로부터 몸을 빼앗긴 그녀. 그리고 그녀를 찾아 온 부르주아의 천박한 기풍이 넘치는 남편.

 세상의 종말만이 가득한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사내로 하여금 종말의 공간을 벗어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지상의 모든 임무가 끝나버린 새들이 찾는 마지막 공간을 그려내는 작가의 몽환적인 솜씨로 인해 페루의 해변은 세상의 종말들이 모두 모인, 그래서 희망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아늑한 절망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로맹 가리에 대해 알고 있는 몇 가지

 1914년 러시아 출생.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하늘의 뿌리」라는 소설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콩쿠르 상 수상. 그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으로 또 한 번의 수상. 2차 세계대전에 참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모험을 즐겼던 사내. 그 모험만큼이나 극적인 삶을 살았던 소설가.

 우리가 로맹 가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처럼 단편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호나 수식만으로는 그의 삶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그가 우리에게 남긴 몇 개의 작품들은 그의 생애만큼이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표제작 ‘새들은…’을 비롯, 16편의 대표 단편들은 독특한 독서 체험을 전해준다. 그의 소설들은 인간 본성의 이면을 안개처럼, 그리고 특유의 음영이 담긴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로를 열망하지만 얇고 부실한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채 열망에 대한 변변한 시도조차 못한 채 죽어 가는 젊은 남녀를 그린 ‘벽’이나 정직한 하인부부에게 속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지하실에 숨어 지내는 ‘어떤 휴머니스트’ 등 그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의 만남은 가슴 속에 뜨거운 화인(火印)처럼 각인된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유태계 프랑스인 로맹 가리. 그가 끊임없이 추구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탐구였다.

 자살은 상처받은 영혼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던가.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겪었던 그가 남긴 작품들은 인류의 상처와 맞닿아 있다.

#PS:새벽 강가에서 혹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겨울의 바닷가에서

 로맹 가리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었던 사람이라면 그의 소설이 피워 올리는 향기에 온 몸이 젖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80년대 소위 운동권 소설의 선두에 섰던 어느 여류 소설가도 그의 소설 때문에 한동안 프랑스 소설만 찾아 읽었다고 고백했던 적이 있다.

 풀지 못할 암호처럼 다가오는 그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새벽 강가나 혹은 물안개 피어오르는 한 겨울의 바닷가에 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절망, 그 끝간데 없는 희망의 부재에 대한 작가의 서술은 독한 프랑스 와인같이 조금씩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그래서 이 세상의 한켠에서 취생몽사(醉生夢死)의 소망을 몰래 간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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