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대 부속 지역아동센터 제주지원단장·논설위원

넋이 나간 듯 발을 뻗고 주저앉아 절망하는 노인과 커다란 깃발을 휘저으며 분노하는 청년을 보았다. 빚으로 신음하는 그리스의 모습이다. 저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우리도 IMF를 겪어 봤기에 안다. 그들의 몸부림이 자꾸 눈에 밟히는 이유는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이고, 우리가 다시 그리스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놓고 여러 갈래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주범의 하나는 복지다. 과도한 복지정책이 국가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복지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복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복지가 생산되는 과정이 잘못됐음을 볼 수 있다. 
 
그리스가 과다한 복지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연금이다. 소득대체율이 95%로 재직기간 평균 연봉과 거의 같은 금액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OECD 통계를 보면 2011년 그리스의 노인 빈곤율은 무려 23%나 된다. 
 
이 수치의 의미는 그리스 노인 모두가 풍요한 연금으로 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나라가 망할 만큼 퍼주는 그리스 연금의 수혜자는 공무원과 법조인, 경찰, 군인, 교원 등 정규직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 좋은 직장을 갖지 못하고 계약직 일자리를 전전하다 은퇴한 수많은 서민들은 후한 연금의 혜택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돼 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리스의 사회안전망은 총체적 부재 상태다. 그리스의 청년 실업률은 50%로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 상태다. 그런데도 실업부조나 실업급여는 거의 없다. 투표권이 없는 아동복지는 더 심각하다. 유니세프에 의하면 2013년 그리스의 아동 빈곤율은 무려 41%라고 한다. 10명 중 4명의 아동이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국가 재정이 파탄났다고 하지만 지탄받는 과다한 복지는 상위층 국민을 위한 향연일 뿐, 정작 서민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표를 거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집단을 향해 복지재정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부패한 복지'인 셈이다. 
 
그리스의 복지는 1981년 안드레우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드리겠다'며 집권한 뒤, 8년간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도입하면서 왜곡이 시작됐다.
 
파판드레우 정권을 이기기 위해 우파 신민주주의당은 더욱 파격적인 복지공약을 제시한다. 좌·우 구분없이 복지경쟁에 몰입했지만 힘없는 국민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철저히 표를 따라갔다. 
 
무분별하게 복지를 키웠지만 약자는 배제된 복지였으며 그리스의 복지는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굳이 그리스 패망의 원인을 복지에서 찾는다면 그건 무능력한 정치 리더십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의롭지 못한 정치인에게 계속 권력을 쥐어준 것은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할 힘을 갖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복지로 표를 샀고, 정치권력을 팔아먹었다. 그리스 복지는 이렇게 집단의 이득만을 노리는 세력과 정권을 거머쥐려는 나쁜 정치권이 서로 포옹해 스텝을 맞추며 돌아간 미친 춤판이었다. 
 
우리가 그리스 사태로부터 추출해야 할 교훈의 출발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복지가 정치의 도구로 활용돼서는 안 되고 또한 거대한 집단이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표'를 무기화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부패한 복지'를 생산하는 부도덕한  '카르텔'의 형성과 작동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탱고는 혼자 추지 않는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