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22일 자신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의, 조만간 회담이 열릴 것처럼 보도된 데 대해 매우 못마땅한 심기를 표출했다.

이 총재는 이날 모스크바에 도착, 교민들과 만찬리셉션을 갖는 도중 측근으로부터 회담보도 내용을 보고 받고 "그런 식으로 보도됐는데도 당에서 전혀 대응도 하지 않고 무엇을 했느냐"며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고 부인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한마디로 자신이 러시아 방문 출국전 `영수회담을 수용할 생각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밝힌 것은 극히 의례적인 것이었을 뿐 김 대통령과의 회담을 적극적으로 제의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나라당이 이달말까지 신 건(辛 建) 국정원장과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이에 불응할 경우 국회 탄핵까지 검토하고 있는 마당에 영수회담을 제의할 리 만무하다는 게 이 총재측의 설명이다.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우리가 회담을 먼저 제의한 것은 전혀 아니다"면서 "검찰과 국정원의 인적쇄신과 시스템개혁이 이뤄진 뒤 회담을 해도 전혀 늦지 않다는 것이 이 총재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김무성(金武星) 비서실장도 "검찰과 국정원의 대대적인 쇄신조치와 중립내각 구성이 먼저 이뤄져야 영수회담이 거론될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청와대가 영수회담을 하기 위해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가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한 핵심측근은 "김대중 대통령의 외국방문 일정과 이총재의 귀국일자를 감안할 때 영수회담은 이달말이나 내달 중순께야 돼야 가능한 게 아니냐"면서 "그러나 우리측에선 내부적으로도 회담을 진지하게 검토해 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의 이같은 해명은 국정원과 검찰 쇄신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김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일 뿐만 아니라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고려, 대여공세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입장에서 회담은 시기상조라는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조복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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