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한 정치부 차장대우

때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도 있다. '영구미제'가 돼 버린 사건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공소시효는 어떤 범죄에 대하여 일정 기간이 지나면 형벌권이 소멸하는 제도로,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실체적인 심판 없이 면소판결을 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뒤늦게 진범을 찾더라도 그를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없다는 의미다. 
 
공소시효는 왜 필요할까. 공소시효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 범죄 관련 당사자들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증거도 상당 부분 변질하거나 소멸되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된 법적인 상태를 존중할 필요가 있고 공소시효는 바로 이를 위한 제도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학수사 기법이 발전하고 수사 인력이 전문화됨에 따라 증거를 오랫동안 보존하여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법적 안정성이라는 것은 단지 범죄자에게만 이로운 것일 수 있다. 이렇듯 더 이상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사건들이 쌓여갈수록 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늘어날 것이고 무엇보다 살인과 같은 범죄의 극악무도함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흐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가 지난 24일 2000년 이후 발생한 형법상 살인사건은 공소시효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일명 '태완이법'을 통과시킨 것은 의미가 있다. 이 법안은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군(당시 6세)이 누군가의 황산테러로 49일간 투병하다 숨진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처하자 정치권에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서 연기되다가 이제야 국회를 통과하게 된 것이다. 
 
16년간 아들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섰던 어머니의 집념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비록 '태완이'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은 역사에 의미 있게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반인륜적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잡히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됐다. 국회가 공소시효 폐지라는 '멍석'을 깔아 놓은 만큼 이제는 경찰이 실력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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