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문철 제주도교육청 교육정책국장·논설위원

"인생은 복식이다" 아침상을 물리고 난 뒤 조간신문을 펴 든 내 귓전을 두드리는 이 한 마디!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얼른 신문을 내려놓고 TV를 향하니, 왕년의 탁구 여제(女帝) 현정화 감독이 연단에 서있는 것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목요일, 내가 즐겨보는 어느 방송 프로의 <목요강좌> 시간이었고, 현정화 감독이 강사로 초대되었나 보다.
 
현정화, 그녀는 누구인가! 지금껏 많은 국민들의 기억 속에 있을 그녀는 1990년 무렵 전후의 한 시절, 우리나라 탁구계를 풍미하던 가히 불세출의 영웅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으리. 이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서 국가대표팀 코치를 거쳐 감독까지 지낸 한국탁구의 대들보로서, 마침내 '국제탁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을 올림으로써, 국가의 명예를 온 세계에 드높인 인물이다.
 
그러나 이 아침 정작 나를 TV 앞에 묶어둔 것은 그녀의 화려한 프로필이 아니라, "인생은 복식이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이었다.
 
그녀는 실타래 같은 시리즈의 인생여정을 설파하면서 그 숱한 영광의 파노라마 속에서도, 유독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하여 마침내 우승의 영광을 거머쥔 '1991년 자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못내 잊지 못한다.
 
오늘의 이 명언(?)은 바로 이 대목에서 나온 것으로, 그녀의 인생철학의 '엑기스'다.
 
내게 공격 찬스가 왔을 때, 무조건 강한 드라이브를 구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내가 이 찬스를 어떻게 처리하면 저쪽에선 어떻게 나올지, 또 그것을 나의 파트너가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 등을 잘 판단해야만 한단다.
 
결국 나와 파트너와 상대방을 계산에 넣고 자기대응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의 지혜와 테크닉은 자기의 파트너에 대한 이해와 배려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엔 복식보다 단식에 능한 선수들이 더 많은 듯하다.
 
장자(莊子)가 어느 날 길을 가다 한 연못가를 지난다. 마침 가뭄이 심한 때라 연못은 거의 말라 물고기들의 등지느러미가 보일 정도로 진흙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장자는 내일이면 저 고기들이 다 말라 죽을지 모른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진 채 지나쳤다가,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연못에 다시 가보았다. 이제는 물이 더욱 줄어 물고기들이 배를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장자는 안타까움에 그날 밤잠을 설치다가 날이 밝자마자 다시 그 연못에 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연못은 완전히 말라 있었다. 그런데 순간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으니, 다름 아닌 연못 한 구석에 물고기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서로 몸이 마르지 않도록 저마다 입에서 거품을 내며 습기를 유지해주어 죽지 않고 모두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장자의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고사의 한 대목. '상유이말(相濡以沫)'이라는 제목으로 회자되는 이야기다. 아니, 그러니까 무엇인가? 무려 BC 4세기 후반의 고전에서, 한낱 미물인 물고기들도 터득한 삶의 지혜와 모랄(moral)을 우린 오늘에 와서 설왕설래하는 꼴이라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비단 인간만이 아니라 사물의 존립도 '홑'이 아니라 '겹'이어야 든든하다.
 
한 겹 동아줄은 없다. 모노포드(mono-pod)가 아닌 트라이포드(tripod)라야 제 몸을 지탱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는 혼자서도 잘 나가는, 아니 오히려 혼자라야만 되는 일들도 많다. 속성과 구조가 그래야만 되는 경우까지도 획일적으로 싸잡으려는 건 물론 아니다.
 
'한국 민족은 모래알 같고, 이스라엘 민족은 진흙 같다' 오래 전에 들은 이 말의 뉘앙스가 어쩐지 좀 그렇다. 배려하는 삶엔 향기가 있고, 협동하는 삶엔 힘이 넘친다. 아침을 열며 내 맘도 연다. 인생은 미상불 단식이 아닌 복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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