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편집국장

아이들이 건전하고 조화로운 인격체로 자라도록 하는 어른들의 책무는 오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에 미치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맹자의 어머니가 세번이나 집을 옮긴 것도, 증자가 부잣집 아이와 노는 아들을 보고 이사해버린 것도 어린 자녀의 교육환경을 걱정해서다. 맹자의 어머니는 묘지에서 시장,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겨 면학적 분위기에 적응하도록 교육환경을 만들었고, 증자는 아들이 남이 잘 사는 것을 보고 자신이 못사는 것에 낙심하고 이를 이유로 부모를 업신여길까 우려한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나 증자처럼 아이들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역시 '어린이헌장'(1957년)과 '청소년헌장'(1990년)을 제정해 아이들이 나라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양질의 환경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정·학교·사회·국가 모두가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하고 아이들 스스로 행복을 가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도록 책무를 부여했다.

나아가 법령을 통해 아이들의 건전한 교육환경 조성 책무를 강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보건법에 규정된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이다. 학교보건법 제5조는 학교의 보건·위생 및 학습환경 보호를 위해 교육감은 대통령령에 따라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을 설정·고시토록 했다. 또 같은법 제6조는 정화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행위제한을 '절대정화구역'과 '상대정화구역'으로 구분하고 학교보건법 시행령에 따라 절대정화구역은 학교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50m 이내, 상대정화구역은 학교경계선(울타리)으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로 각각 설정토록 했다. 이에 따라 50m 이내의 절대정화구역 안에서는 모텔·단란주점·노래방 등 각종 숙박·유흥업소와 PC방 등의 설치를 일절 금지하고, 200m 이내의 상대정화구역 내에 대한 영업허가도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와함께 도지사 등 관련 행정기관장은 학교정화구역내에서의 금지 행위·시설 방지를 위해 공사 중지·제한, 영업 정지 및 허가의 거부·취소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도내 학교정화구역이 영업권과 재산권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2013년부터 올해 7월까지 도내 학교정화구역내 금지행위 및 시설 해제를 신청한 169건 가운데 72.1%에 달하는 122건이 승인됐다. 업종별로는 여관·모텔·호텔 등 숙박업소 82건이 해제된 반면 금지는 32건에 불과했다. 유흥·단람주점도 23건 허용, 불허 7건으로 나타나면서 교육당국은 물론 행정당국의 아이들 교육환경 보호정책이 헛구호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상권이 확대되고 있는 제주시 연동·노형동의 경우 재산권 보호 등을 이유로 최근 5년간 지정 해제율이 93%에 달하고 있다. 

제주도와 도교육청이 재산권과 영업권을 앞세워 스스로 만든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을 홀대하는 것은 아이들을 유해환경에 내모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지 않아도 아이들은 등·하교때마다 학교정화구역내 즐비한 유해업소들에 노출돼 학부모들의 걱정이 적지 않다.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당연히 다른 어떤 곳보다 좋은 환경이 제공돼야 한다. 그런데도 제주도와 도교육청이 학교정화구역내 금지시설을 이런저런 이유로 해제하는 것은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책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건전하고 바른 인격체로 자라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린이헌장이든 청소년헌장이든, 또 다른 어떤 법령이든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보아도 그것을 만들어놓은 어른들이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른들의 잇속으로 아이들이 해로운 환경에 노출되면 될수록 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나라의 미래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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