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어떤 모임에서 '이것이 인간 관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비결이구나'라고 생각되는 한 장면을 목격했다. 그 자리에서 Y씨가 M씨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자 M씨는 Y씨에게 "당신이 나를 비난하는데, 나한테 비난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Y씨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M씨는 "그렇다면 내가 듣기 불편하니 말을 좀 가려서 하라"고 요구했다. Y씨는 다소 당황해 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얼마 전 필자 자신이 인턴 훈련을 받는 집단활동에서 리더의 지시로 교재를 나눠 준 일이 있었다. 그 때의 상황은 리더가 한창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필자는 교재를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리더나 집단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했다. 리더는 나에게 '나눠주는 행동을 중지하라'고 싸인을 주었지만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필자는 그 행동을 계속했다. 그 날의 활동이 끝나고 평각시간이 되자 필자는 리더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 순간의 장면에 깨어있지 못하여 리더를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집단원들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는 눈만 뜨면 타인과의 관계를 갖지만 타인의 세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침범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남을 비난하거나 남의 일데 개입할 때 그들의 세계(입장)를 교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부관계에서 보더라도 남편이 늦게 귀가하면 아내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도 전에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해 불평을 하거나 화를 낸다. 남편의 경우도 기다리는 아내를 배려하는 전화도 없이 늦게 귀가한다. 부모는 자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해, 저렇게 해'하고 지시한다. 친구지간이나 동료들간에도 이런 일은 수 없이 일어난다.

이처럼 아무런 동의도 없이 상대방의 세계를 침범하는 것을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거나 존중하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 순간의 상황에 깨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그들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는 말을 한다. 사람들마다 의식의 층이 다르다. 1층의 수준에 있어서 조망거리가 좁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5층에 있어서 그보다 더 넓은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주 높은 사람은 자기나 타인의 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 어떤 행위에도 걸림이 없다. 개인의 의식수준은 그 사람이 순간에 얼마나 깨어있느냐에 달려있다.

의식의 수준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도 달라진다. 지금 제주도는 국제자유화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서로를 비방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이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만일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다면, "내가 당신을 비난하고 싶은데 당신을 비난해도 괜찮겠느냐"라고 물어보자. 만일 상대방이 그 자리에 없다면 전화를 걸어서라도 동의를 구해보자. 아마도 그렇게 동의를 구하는 순간 욕을 하거나 비난하는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비록 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왜곡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제주 도민의 의식은 상승될 것이며, 보다 성숙한 주인으로서 국제자유화를 맞이할 것이다. <박태수.제주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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