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21세기한국연구소장·정치평론가·논설위원

지금 리더십의 종류를 둘러싼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20∼40대 세대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강력한 항의 소식을 자주 접한다. 항의 주체는 그 세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것을 세대갈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조차 많다.

또는 한 집안에도 의사전달 체계의 차단으로 갈등이 확산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정부에 대한 항의도 이런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부의 의사결정이 너무 형식적으로 이뤄지며 그 과정에서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리더십은 수직적 리더십이었다. 한 사회의 미래 리더십은 이미 예정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리더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이웃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리더십의 영역은 이제 수평적으로 설정돼야 한다. 젊은 사람들의 힘에 의해 이제 리더십은 그런 방향으로 설정돼 가고 있다.

이제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가 리더를 결정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리더십의 영역은 소통을 잘하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배운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생각을 결정할 때도 의견을 잘 듣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모든 결정은 소통을 거쳐 결정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행계획까지 세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나라 전체의 운영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소통 민주주의의 특성이다.

소통이라는 말은 국회에서도 계속 거론된다. 그러나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진심어린 소통을 하지 못하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국회에서의 힘 관계는 소통의 관계가 아니라 갑을관계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은 젊은 청년의 경쟁 마당에 잽싸게 끼어들어 자신의 아들과 딸, 또는 조카 등을 밀어 넣는다. 이때 국회의원과 기업의 소유-경영자 사이에는 정확하게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갑을관계는 권위주의적 리더십과 제도적인 민주주의만을 강조하는 리더십 사회에서 계속 번성한다. 소통 민주주의에 서툰 국회의원들은 인간관계를 흔히 갑을관계로 해석하곤 한다. 결코 내가 소중한만큼, 너도 소중하다는 인식으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소통 민주주의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이 모두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지금은 이런 인간관계가 확대돼 나가는 시점이다. 확대과정에서 온갖 내부적인 갈등이 다 벌어진다.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득세하는 사회에서는 강자와 약자가 분리되고, 그 기저의 논리에는 갑을관계의 논리가 춤을 춘다. 다음 제도적인 민주주의 영역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영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논리에서 시작하지 않는 제도적 민주주의는 결국 사상누각과 같은 위치 즉 '수입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소통 민주주의는 기존의 민주주의, 아니 권위주의의 논리에 비해 매우 우수한 특성을 보인다.

소통 민주주의는 바로 오늘의 인간관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금 20∼40대의 젊은 그룹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잘 안다. 물론 노인세대에서도 대화가 통하고, 자주 만나 담소하는 사람들은 소통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소통이 된다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는 느낌부터 다르다.

필자는 일단 담소와 전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SNS를 통한 교류도 얼마나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모른다.

중장기적으로 소통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승리자로 떠오를 것이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는 자주 느끼고 있다. 서로 인격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화를 통해 옳은 대안을 찾는 노력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