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백훈 성균관대 초빙교수·논설위원

사극(史劇)에서 '죽여주십시오'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최근 방영된 '징비록'에서도 맡은 책무에서 성과를 얻지 못해 국가에 누를 끼치게 됐으니 자기의 목숨을 거둬 일벌백계의 시범케이스로 해달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명나라와 왜국이 조선을 무시하고 강화협상을 하려는 것을 중국 조정에 알리고 부당함을 바로 잡으려고 사신으로 갔지만 방해책동에 의해 성과없이 귀국해서 보고 하는 자리에는 '죽여주십시오'가 나온다. 정책실패에 대해서도 벌을 청한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공직자가 개인적 비리 외에 정책이나 정치의 실패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당당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의 자세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논어」에는 '군자(君子)는 회형(懷刑)하고 소인(小人)은 회혜(懷惠)한다' 즉 '군자는 형벌을 생각하고, 소인은 은혜를 생각한다'라고 해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고 있다. 군자는 형벌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기 때문에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아니 될 일을 구분, 몸가짐을 조심히 하는 것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다. 반면에 소인은 눈앞에 이익만을 생각하며, 자기가 이득을 위해 잘못한 것에도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고 변명을 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잘못에 대해서 당당히 벌을 달게 받고 목숨도 바친다는 자세다. 그러니 백성을 위해 다스릴 수 있는 공복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공적인 업무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데 사적인 개인적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국민에게 죄를 씻으려면 목숨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필자는 과거 교통 위반을 한 경우가 생각난다. '아주 급한 일이 있어서 불가피하게 됐으니 한번만 봐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꼭 범칙금을 부과해야겠다고 하면 '싼 걸로 끊어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이런 저런 사정을 이해해 달라거나 눈 감아 달라고 하는 것이 공자가 말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회혜의 모습이다.

그래서 '아! 나는 소인이구나! 나는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공복이 될 자격은 없는 사람이로다. 국회의원 등의 선거에도 나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꿈을 깨고 수신제가(修身齊家)에나 목표를 정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국회의원들은 뇌물 수수, 성추문, 취업 청탁사건에 연루됐으나 의원직은 사퇴하지 않는다. 또한 정부 최고위직을 지닌 국회의원에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그런데 대법원 판사 전원일치 판결에 대해서도 탄압이라고 한다. 구속 수감되면서 희한한 환송식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슬프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소인배 정치인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하니 매우 괴롭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판결문에서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며 따라서…"라고 해 반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최고위직까지 지낸 정치인이 구치소 앞에서 백합꽃을 들고 환송식이라고 하니 반성은커녕 법치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니 보통 사람보다도 못한 소인배들의 모습이다.

백합꽃이 만약 말을 한다면 모욕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있어 출세를 하고 특권을 누렸으면 국민에게 '죽여주십시오'는 못할망정, 조용히 들어가 회개하고 정치에서 은퇴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년후에 대선 선거 운동을 하겠다고 당 간부 등에 말했다고 하고 국민에게 사죄한다는 말은 안들린다.

이런 소인배들에 대해서는 국민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신하고 당당한 군자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최소한 비굴한 소인배가 아닌 보통사람의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명심해서 골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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