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사극 지향한 '사도' 16일 개봉…"오만 늘 경계"

"역사라는 것은 공동의 재산이거든. 감독이 자기 세계 안에 가둘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에요. 감독이 역사를 자기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죠."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사도'를 연출한 이준익(56) 감독은 7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영조 대왕에 의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춰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한 정통사극이다.
 
조선왕조 3대에 걸친 56년의 역사를 최대한 실록에 근거해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는 전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번 영화는 추석 연휴 한 주 전에 개봉해 '암살', '베테랑'의 흥행가도를 이을 만한 한국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와 떠오르는 충무로의 샛별 유아인이 각각 영조와 사도세자로 분했다.
 
 
'사도'는 이 감독의 10번째 연출작으로, '황산벌',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에 이은 다섯 번째 사극이다.  
 
2005년 1천230만명의 관객을 모은 '왕의 남자'로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이 감독은 이번 영화 '사도'에 오락성을 줄인 정통사극을 지향하며 기름기를 확 뺐다.
 
이 감독은 "역사는 기록과 고증만을 통해 진실에 도달하려고 하나, 영화는 기록과 고증이라는 밑바탕 위에 일정 부분의 허구를 통해 진실에 가까워진다"며 "허구는 왜곡과 날조로 나뉘는데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왜곡은 사실의 범주에서 살짝 방향을 튼 것이고, 날조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감독은 "'사도'에 날조는 없다"며 "왜곡은 있을 수 있으나 그 정도가 미세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실과 허구의 비율은 9 대 1 정도"라고 덧붙였다.
 
시나리오 집필에 이 감독과 3명의 작가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한중록 등 모든 사료를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다. 대사의 70∼80%는 사료에 나온 대로라고 한다.  
 
"250년 전 자기 나름의 삶에 온 힘을 기울였던 영조, 사도, 정조를 제가 소환하는 겁니다. 그분들은 우리 공동의 유산이고 재산으로, 감독이 함부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죠. 제 관점이 공손하고 예의 바르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감독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이번 영화의 '관점'은 무엇일까.
 
"이 영화의 관점은 사건을 설명하는데 이전에 많이 소비됐던 프레임인 정치적 권력관계를 우선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나라는 존재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총합을 통해 나의 존재를 부여받는 것이잖아요. 주변의 관계 속에서 인물과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내는 데 방점을 찍었죠."
 
 
그는 자신이 '오만 덩어리'에 인생은 '갈 지(之)'라며 특유의 서글서글한 인상에 재치있는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평양성'이 흥행하지 못하면서 호기로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실수를 했어요. 제가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웃음) 호기가 아니라 오만이었죠.(웃음) 오만과 치기는 지금도 있죠. 무너질 때가 잦지만 오만을 늘 경계하려고 해요."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재미와 의미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매 순간 고민합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재미와 의미의 균형을 잡았다는 뜻이죠. '사도'도 두 가치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를 놓지 않았어요."
 
'사도'는 명품 배우들의 연기에 논리적인 상상력과 입체적인 이야기 전개방식을 통해 250년 전의 역사를 실감 나게 재구성한 재미가 있다.
 
또 그 속에서 영국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에 비견되는 교훈과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정조가 즉위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에 4배를 올리고 춤을 추는 장면은 이 감독의 '해원'(解寃)이 담겨 있다. 이 감독은 이를 통해 세대 간의 갈등이 큰 이 시대에 화해를 권했다. 
 
그에게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큰 고충이 무엇인지 물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 가장 힘듭니다. 지금 제가 선택한 이것이 과연 관객들과 마주할 때 온전하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인가…매번 커트와 오케이를 놓을 때는 살떨리는 불안감의 연속이예요. 영화를 찍고 대중과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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