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배 넘는 뱃삯 내고도 목숨 걸고 보트 타…"해안경비대 구조요청 묵살"
모터도둑만 난민보트 반겨…해변엔 구명조끼·고무보트 쓰레기 더미

유럽행 중동 난민의 첫 기착지인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는 부조리가 일상처럼 되풀이되고 있었다.
 
보통 뱃삯의 50배 많은 돈을 주고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바닷길을 자처한 난민들은 10일(현지시간)에도 레스보스 북부 해안가로 계속 몰려왔다.
 
이날 오전 11시께 도착한 길이 8~9m, 폭 2.5m 크기의 9인용으로 보이는 이 보트에서는 젖먹이 1명을 포함해 54명이 내렸다.
 
시리아 남부 다라에서 온 이 보트의 '선장' 마지드씨는 터키 아소스에서 5㎞ 정도 거리인 레스보스 섬 북부 해안을 건너는 데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디젤엔진 모터를 단 이 보트는 정원만 태웠어도 파도가 거의 없어 1시간이면 충분했다.
 
작은 상점을 운영했다는 마지드씨가 선장이 된 것은 이날 아침이었다. 밀입국 브로커는 이날 일행의 리더인 그에게 터키 해안에서 모터를 작동하는 시범을 두어번 보여주고서는 도망쳤다고 했다. 
 
이 브로커는 어른에게는 1천200 달러(약 142만원)를, 어린이에게는 800달러를 받아 5천만원 넘게 챙겼기 때문에 보트를 버리는 게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섬이 바로 앞에 보였지만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다가 땅에 발을 디딘 아이들과 여성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청년들은 "유럽!"이라며 환호를 질렀다.
 
청년들의 환호는 곧 분노로 바뀌었다. 해안에 즐비한 형광색 구명조끼를 주워 흔들면 길 안내를 해줬던 그리스 청년이 이 보트에서 모터를 훔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시리아 청년은 모터를 가져가는 대신 북부 해안에서 60㎞ 거리인 미틸리니 항의 난민 등록소까지 차를 태워달라고 요구했고, 그리스 청년은 "노 노"라고만 하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취재진을 태운 택시 기사들이 난민 편을 들자 청년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고 시리아 청년은 축구공 크기의 돌로 쓸모가 없어진 모터가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내리쳤다.
 
택시 기사 게오르기씨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것을 훔치는 것은 제일 나쁜 도둑"이라며 "저 사람은 그리스 사람이 아니다"라고 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곧장 경찰에 전화를 걸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증거가 있다며 신고했다.
 
이 해변을 따라 5㎞ 남짓 가는 동안 모터가 없는 검정 고무보트와 구명조끼가 즐비해 해안은 형광색과 검은색으로 뒤덮였다. 
 
택시를 타고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앞에 가던 픽업트럭에는 구명조끼와 고무보트가 가득 실렸다. 이 차는 언덕 중간쯤에 구명조끼 수천개가 쌓인 더미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려 구명조끼 등을 버리는 60대 남성 2명에게 공무원이냐고 묻자 "여기에 정부가 어디 있느냐"며 전부 주민들이 모아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매일 보트 15~20개씩 갖다버려도 아침에 나가보면 어제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난민보트 대부분이 도착하는 북부 해변에서 섬 남부의 미틸리니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태워달라고 손을 흔드는 난민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났다.
 
게오르기씨는 어린 아들을 목말에 태우고 "헬프 미, 헬프 미"라고 외치는 남성에게 태워주고 싶지만 그러면 자신이 감옥에 가고 택시면허도 박탈당한다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택시와 시외버스가 등록소에서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지 않은 난민을 태우는 것은 법적으로 인신매매 행위로 간주해 금지했다면서 어차피 증명서를 내줄 거면서 난민들을 고생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비정부기구가 운행하는 소형 버스와 자발적으로 승용차를 몰고 나온 주민과 외국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난민들은 이날 도착한 2천여명 중 일부에 그쳤고 대다수는 수십시간을 걸어야 했다. 
 
유명 관광지라 호텔이 곳곳에 있었지만 정부는 증명서를 받지 않은 난민의 호텔 이용도 금지해 길바닥에서 자야 했다. 
 
미틸리니 인근 실버베이호텔에서 만난 시리아 청년 압둘라는 증명서를 받기 전까지 사흘 동안 노숙했으며 전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압둘라는 또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자신의 구조요청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중에 갑자기 보트가 크게 흔들려 신고했는데 해안경비대는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으면 구조하러 갈 수 없다고 답하더라"며 "레스보스 섬에서는 터키 땅도 잘 보이는데 그 사이에 있는 보트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매일 난민 몇명씩 구조했다고 발표하지만, 구조보다는 접근을 막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방송사 CBS는 전날 그리스 영해 쪽에서 온 소형 고속보트에 있던 검은 제복을 입은 남성들이 난민들에게 소총을 겨누고서는 모터의 연료선을 자르는 장면을 촬영해 보도했다. 
 
터키 아이발륵에서 레스보스 섬으로 가는 페리선에서 만난 CBS 홀리 윌리엄 이스탄불 특파원은 "그리스 해안경비대로 보여서 공식 코멘트를 요구했더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모터의 연료선을 자르거나 총기로 위협한다는 것은 터키 언론들도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레스보스 섬에 파견된 유엔난민기구(UNHCR) 관계자는 "CBS 보도와 비슷한 주장들을 들었지만 공식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변에서 난민에게 물과 바나나를 나눠주던 스위스인 막스 씨는 "난민들이 처음 도착해 도움이 절실한 이 해변에는 정부도 비정부기구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요가 캠프가 있어 이 섬에 머물다가 이 사태를 직접 목격해 지난주에 다시 왔다며 "내일 스위스로 돌아가지만 11월에 다시 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리스 정부가 전날부터 크루즈선 2편을 증편해 난민들을 매일 수천명씩 본토로 수송했지만, 미틸리니 주변에는 마피아가 독점해 비싼 값에 파는 것으로 알려진 소형 텐트에 거주하는 난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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