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전 한마음병원장·논설위원

흔히 '국격'(國格, 나라의 품격)은 그 나라 국민의 문화 수준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어느 도시의 품격은 그 도시의 구성원들의 문화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문화'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 보면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의 총칭, 특히 학문, 예술, 종교, 도덕 등의 정신적 소득을 가리킨다'고 돼 있다. 즉 넓은 의미로 우리 일상 생활이 모두 문화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문학과 예술 활동으로 국한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제주지역은 지리적 그리고 생태적으로 독특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독창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과 섬이라는 한계 때문에 예술 활동에서 많은 제약을 받아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제주에서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구경할 수가 없었다. 1960년대에 5·16 도로가 뚫려 관광 산업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고 감귤이 대량 생산돼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되면서 예술 활동도 활발히 펼쳐지게 됐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아직도 많은 도민들이 이런 예술 활동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8월초에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고영림 박사가 구도심 살리기의 일환으로 옛 코리아 극장에서 매달 첫 금요일에 프랑스 영화 중 명화로 꼽히는 작품들을 프랑스 문화원의 협조로 무료 상영하는 프랑스 영화제의 일환으로 상영된 것이다.

평소에도 만원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 따라 관객이 겨우 10여 명에 불과했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고 박사에게는 물론 특별 초청된 영화 평론가에게 말할 수 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또 지난 8월8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제주국제관악제에 세계적 거장들이 참가, 공연을 펼쳤으나 도민 관객들은 너무나 적었다. 특히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분들은 그 모습을 보기가 무척 어려웠다.

제주국제관악제가 동아콩쿠르와 윤이상 음악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음악제로 꼽히는데 도민들의 반응이 이렇게 미지근한 것은 정말 속상할 일이다. 더구나 미리 몇 악장이라는 설명이 있는데도 악장 사이에 박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공연 중에 자리 이동이 그치지 않는 것 등은 빨리 시정해야 할 사항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관객들의 관람 태도가 조금씩이나마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8월15일 광복절 저녁에는 각국 참가 대원들이 문예회관에서 탑동 공연장까지 함께 퍼레이드를 펼쳤는데 길가에 구경꾼들이 드물 뿐만 아니라 그마저도 덤덤히 쳐다보기만 하니 맥이 빠질 일이다.

어떤 분들은 제주에서 공연되는 예술 활동의 질에 대해서 아쉬워하거나 심지어 폄하하기도 하면서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속담에 '첫 술에 배부르랴'라는 말도 있듯이 처음부터 수준 높은 공연만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국산 자동차가 만들어 질 때만 해도 세계의 조롱거리였으나 이제는 어엿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또 전에는 일본 문화를 베끼는 데에 혈안이 돼 있었으나 이제는 우리 문화가 일본 속에서도 인기를 끌게 됐다.

우리 제주가 살 길은 결국 관광과 1차 산업의 육성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1차 산업은 제주의 청정 자원을 배경으로 한 가공 산업의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관광은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급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문화 행사에 적극 참여해 도민들의 문화 수준을 높임으로써 후손들에게 행복한 제주를 물려 주도록 다 함께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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