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미 부국장대우·경제부

만약 당신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00만원'이 주어진다면. 어느 순간 사회적 잣대가 된 '100만원' 얘기다. 100만원의 가치를 묻는다면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1대에 10만원씩 퇴근길 수행비서에게 100만원을 줬다는 비뚤어진 재벌 3세가 논란이 되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돈을 대신 받아 인출해주면 수고비로 1건당 100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혹해 한순간 범법자가 된 주부도 있었다. 자치단체들이 '묻지마 빚 축제'를 벌이면서 100만원을 들여 72만원 날렸다는 소식이 공분을 사기도 했는가 하면 폐지를 팔아 모은 100만원을 기부한 팔순의 할머니가 가슴을 훈훈하게 했다.

앞으로는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무조건 퇴출된다는 내용을 담은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 계정 계획도 나왔다.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변호사 등 고소득자영업자들은 100만원을 벌면 31만원은 신고하지 않았다는 분석 자료가 화병을 부르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압도적인 '100만원'은 50대 이상 자영업자 절반가량의 월평균수입과 관련한 조사결과다. 국민연금연구원의 '중·고령자 경제생활 및 노후준비 실태' 연구보고서를 보면 50세 이상 비임금 근로자의 월 평균 급여비율은 월 100만원 미만이 44.7%로 가장 높았고 이어 월 100만~200만원 21.3%, 월 300만원 이상 17.9%, 월 200만~300만원 16.1% 순으로 나타났다. 비임금 근로자란 회사 등에 고용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이끌거나, 가족이 경영하는 사업체에 속해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사실상 자영업자를 의미한다. 평균해보면 50대 이상 자영업자의 절반은 월 100만원 벌이도 못한다는 결론이다.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이 "알바생이 부럽다"는 사장님 어록이 더 이상 우스개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앞서가던 10명 중 4명이 돌아본다는 얘기도 마냥 부러운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제주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36.3%(무급가족 종사자 포함)로 전국 평균(27%)을 크게 앞선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2003~2014년)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불균등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자영업자의 소득불평등 지수는 2010년 0.266에서 지난해 0.271로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임금근로자는 0.281에서 0.272로 낮아졌다.

정리하면 임금근로자와 달리 자영업자의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유도 분명했다. 조기 퇴직 이후 소규모 자영업에 뛰어든 가장이 증가한 데다 가구주 외 가구원의 경제활동 부진으로 부(副)소득원천이 감소한 때문으로 분석됐다. 새로운 악순환이다.

제주만 하더라도 종업원 없이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나 홀로 점주'가 전체 자영업자의 78.3%나 된다. 반대로 말하면 인건비라도 줄여야 유지할 수 있는 점포가 10곳 중 7곳이 넘는다는 얘기다. 당장 인건비를 충당할 여력이 안 되니 가족의 손이라도 빌릴 수밖에 없는 사정은 무급가족종사자 증가로도 가늠할 수 있다. 경기 불황으로 가게 매출이 줄어들면서 부업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영세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정이 이런데도 고용 문제와 관련해 '창업'지원이 봇물을 이룬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일자리 쪼개기 같은 불편한 논란을 쉽게 풀겠다는 얘기로 비춰진다.

시장이 제한적인 상황을 감안해 중견기업을 지원하거나 재창업 창구를 운영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란 의견도 제시됐지만 아직까지 논의 단계에 그치고 있다.

올 초 무분별한 생계형 창업을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 중소기업청의 성장단계별 소상공인 지원 계획에서도 제주에는 재창업 교육기관이 단 한 곳도 선정되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기준이 제주에 맞지 않는다면 스스로 맞춤옷을 만드는 것이 방법이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에 세상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