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 포커스]생존기로에 놓인 감귤산업

▲ 올해부터 상품규격이 바뀌고 감귤생산 실명제가 도입되는 등 감귤 정책이 대폭 변경되면서 고품질 감귤 생산·유통을 위한 농가와 농·감협 등 생산자 단체, 상인 등의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사진은 감귤을 선과하는 모습. 김지석 기자
노지감귤 본격 출하 앞서 비상품 유통 극성
개정 감귤유통조례 시행 상품 규격 등 변경
상인·생산자 단체도 '파치' 자율 폐기해야

올해부터 상품규격이 바뀌고 감귤생산 실명제가 도입되는 등 감귤 정책이 대폭 변경되면서 고품질 감귤 생산·유통을 위한 농가와 농·감협 등 생산자 단체, 선과장 등의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감귤 혁신 5개년 개획이 첫 시행에 들어가는 만큼 감귤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완숙과 수확, 비상품·결점과 가공용 출하 등 농가들의 자성과 실천이 고수익을 보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행정과 감귤 유통인들 역시 비상품 감귤 출하 근절 등을 통해 감귤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소탐대실'은 금물

올해도 노지감귤 본격 출하를 앞두고 비상품 감귤이 버젓이 유통되다 과태료 처분을 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감귤 출하가 시작되면서 비상품 감귤 유통에 대한 도내 농가와 농정당국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서귀포시가 지난달 상습 비상품 감귤 유통 선과장으로 분류된 서귀포 지역 선과장 등을 집중 단속한 결과 올해도 모두 13건·95t을 적발, 23t 가량은 현지 폐기했다.

올해는 추석이 지난해 9월8일보다 20일 가량 늦은 9월27일인 데다 본격적인 올해산 노지감귤 출하일인 10월5일보다 8일가량 빨라 비상품 감귤이 기승을 부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11년 이후 노지감귤 첫 출하시기는 올해 추석 연휴와 비슷한 2011년 9월29일, 2012년 9월26일, 2013년 9월29일, 2014년 9월25일 등인 것 등을 감안하면 9월 말이면 극조생 노지감귤의 착색도 및 당도 등은 상품 기준을 일정부분 충족시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부 비양심 유통업자들은 감귤을 제주의 생명산업이 아닌 자신들의 '돈 벌이'로만 인식, 비상품 감귤을 '마구잡이'식으로 사들여 시장에 유통, 감귤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상품 아니면 설 자리 없다

제주도가 '명품 감귤' 생산·유통 등을 위해 수립한 감귤혁신 5개년 계획은 4개 분야·73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주요 사업을 보면 감귤생산실명제, 감귤산업발전자문단 구성·운영, 품종갱신, 감귤 상품규격 5단계 적용, 가공용 감귤 출하 할당제 도입, 가공용 감귤 적정량 수매, 강제착색·비상품 감귤 도매시장 출하시 반품, 농·감협 계통출하 확대 등이다.
 
이들 과제들이 정상적으로 추진된다면 감귤혁신 5개년 계획의 실행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또다시 '말뿐인' 계획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만큼 제주도정의 실천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올해산 강제착색 및 비상품 감귤은 전국 도매시장에서 퇴출, 설 자리가 사라진다.
 
지난 2월 제주도·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매시장 등 6개 기관은 지난 2월23일 올해산 노지감귤부터 비상품감귤의 도매시장 상장을 거부하고, 출하자에게 반품하는 등 비상품 감귤 유통 근절을 위한 상호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강제착색·비상품유통 근절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도는 오는 6일부터 비상품 감귤을 2회 이상 유통한 선과장의 품질검사원을 모두 해촉이 가능하고, 해촉일로부터 6개월간 품질검사원 위촉을 제한하는 내용의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시행한다.

선과장은 행정시장으로부터 위촉받은 2명 이내의 품질검사원을 두고, 품질검사원이 검사한 상품만 출할 수 있어 품질검사원이 6개월간 해촉되면 사실상 올해산 감귤은 출하할 수 없게 된다.

또한 도는 비상품감귤 유통행위를 적발하면 해당 선과장에 과태료 부과와 함께 적발된 감귤을 폐기 또는 가공용 감귤로 처리하도록 명령한 후 미이행시 대집행을 한다는 방침이다.
 
△아까워도 버릴 것은 버려야
 
제주도가 감귤 산업 육성을 위해 감귤원 폐원, 적과, 가공용 감귤 수매 등 각종 감귤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명품 감귤을 만드는 데는 역부족이다.
 
이는 행정의 추진의지 부족이나, 감귤 정책의 현실성 문제 등도 있지만 농가·생산자단체·유통인 등 감귤 주체들의 참여가 부족한 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과거 감귤 과잉생산으로 가격 폭락이 예상되자 농정당국이 마련한 감산정책 등에 대해 감귤주체들이 동의했지만 결국 '나 하나쯤이야'하는 일부 비양심 감귤주체로 인해 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이 퇴색되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기존 1번과를 상품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란 끝에 제주도는 상품 규격을 변경, 기존 1번과 일부를 상품으로 전환했다.

제주도 감귤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 시행규칙이 개정,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된 시행규칙은 감귤 품질 기준을 기존 0번(46㎜ 이하), 1번(47~51㎜), 2번(52~56㎜) 등 0번~10번까지 11단계였던 것을 2S(49∼53㎜), S(54∼58㎜), M(59∼62㎜), L(63∼66㎜), 2L(67∼70㎜) 등 5단계로 축소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올해부터 그동안 비상품으로 분류됐던 1번과(47~51㎜) 가운데 일부(49~51㎜) 감귤이 상품으로 전환된다. 

그동안 비상품이었던 1번과 일부가 상품으로 전환된 것을 틈타 비상품 49㎜ 이하 출하할 경우 감귤 가격 하락을 부추길 수 있는 만큼 농가들이 '아깝더라도' 비상품을 과감하게 폐기해 올해산 감귤의 '제값' 받기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주형 기자

김성언 ㈔제주감귤연합회장

"올해산 감귤의 출하 초기 가격이 앞으로 감귤산업의 향배를 좌우할 것이라고 본다. 행정이나 다른 누가 해주는 일이 아니라 농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김성언 ㈔제주감귤연합회장(효돈농협 조합장)은 "'시장교섭력'이라는 것이 단순히 높은 가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좋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잘 키운 감귤이 제값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노지감귤 출하시기가 열흘 정도 앞당겨지면서 가격 기대감에 '약속'을 어기는 사례에 대한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 김 연합회장은 "정작 농가나 상인들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가격 욕심을 챙기는 것으로는 감귤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며 "가격 하락 등 일련의 상황을 행정이나 농협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농가들 스스로 달라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단언했다.

올해 진행되는 '실험' 역시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새로운 감귤 출하 기준 적용은 물론 통합브랜드작업까지 이어지는 등 '명품화 사업'을 기준으로 한 변화가 시장과 생산농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김 연합회장은 "어떤 일이라도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주기적으로 주요 도매시장과 농가를 돌며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 모델을 만드는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청과 고태호 경매사

 
"'감굴 명품화'를 위한 정책이 마련된 만큼, 감귤 생산부터 소비까지 이르는 모든 단계의 관계자들이 적극 동참해야 한다"

도매시장법인 서울청과(주) 고태호 경매사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추진하는 감귤유통혁신대책에 대해 "감귤유통 혁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행정이 고심한 흔적이 있다"며 "잘 마련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고 경매사는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정책이라 해도 준수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생산부터 소비까지 전 단계에 걸쳐 철저한 준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고 경매사는 이번 대책과 관련 "보완은 필요하다"며 "제주도가 생각하는 비상품과 소비자가 생각하는 비상품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감귤 명품화'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명품의 기준이 크기나 상처 등 외연에 둬서는 안 된다"며 "행정에서는 1번과가 작아서, 상처과는 흠집이 나서 비상품이라고 분류하지만 크기와 외연을 떠나 당도가 높으면 시장에서는 '좋은 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고 경매사는 "'감귤 명품화' 정책에서 비상품을 판단하는 평가항목 자체가 너무 주관적으로 해석가능한 점도 개선돼야 한다"며 "감귤을 평가할 때 평가자가 달라지면 평과결과도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판단이 배제돼야 더 엄정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정성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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