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익 제주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생활이 냉정하고 무섭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어느날 깜빡 잊고 숙제를 못해 와서 다음날 쉬는 시간에 했는데 이를 본 친구가 선생님께 고자질을 했다. 숙제는 검사하기 전까지 다하면 되는 것이지 꼭 집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필자의 항변에 선생님도 판단을 망설였지만, 끝내 나를 숙제 안 해 온 아이로 분류해 벌을 내렸다.

어쨌든 필자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고소 비슷한 일을 당해 벌어진 작은 소송은 보기 좋게 필자의 패소로 끝났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지만 독기만 남은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칭찬받을 방법이라고는 고자질 밖에 없다고 느꼈는지 그 후로도 계속 고자질로 반에서 존재감 있는 아이로 처신했다.

그 아이가 고자질할 때는 눈빛이 쥐를 잡으려는 고양이처럼 날카롭게 빛이 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필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들을 살면서 계속 만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초등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딛고 보니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고자질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고소는 다 큰 어른들이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수많은 고소가 난무하고 있는데, 그 많은 사건 중에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해 법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현재 인력으로는 그런 사건만을 골라서 처리해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지금도 고자질하던 버릇을 못 버린 아이들이 자라나서는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마구잡이로 고소를 해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대화나 토론을 하다가도 언성이 높아지면 말 꼬리를 트집삼아 '두고 봐, 고소할거야'라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어렵사리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대화중에 자신을 '뻐꺼' '듣보잡'이라 했다고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정도 사안이면 서로들 사과하고 화해할 수도 있지만 고소를 한 결과 수사경찰관에서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의 고급인력과 예산이 여기에 투입되고 말았다.

더구나 우리 형법에는 모욕죄처럼 친고죄는 아니면서 법리상 그 정체와 기원이 애매모호한 반의사불벌죄라는 형태의 명예훼손죄가 있어서 고소 남발현상을 더욱 더 부채질하고 있다.

명예훼손죄는 진실을 말해도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성립할 수 있고,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아도 수사를 할 수 있는 희한한 성격의 범죄이다. 

한편 우리 인구는 약 5000만명인데 매년 접수되는 고소 건수가 평균 잡아 약 55만건에 이른다.

일본은 인구가 우리의 2.5배 정도이니 고소도 우리와 비슷한 비율로 발생한다면 매년 약 130만건 정도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형사법체계와 문화권이 우리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1년에 고소 건수가 전국을 통틀어 1만건을 넘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법제도에는 법의 보호를 받을 가치가 없는 사안이라도 일단 고소부터 하게 유인하는 그 어떤 요소들이 있다고 본다. 더구나 제주의 경우는 인구비례 고소율이 전국 1위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분석은 지면이 허락할 때 다시 살펴볼 예정이다.

물론 추억속의 필자의 얄미운 친구가 용케도 아직 살아있다면 지금도 바쁘게 고소장을 써 들고 경찰서마다 순방하며 다닐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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