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챕터 대표·논설위원

현재 우리나라는 판이하게 나뉘는 정치적 견해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의지와 그 표현 욕망이 강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2014년 퓨리서치센터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단화 추세는 더욱 강해졌고, 현재 만연해 있는 당파적 반감은 지난 20년 동안 그 어느 시점에 비해서도 더욱 깊고 넓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적 견해에 대한 호불호가 단순히 '취향'의 문제인지 아니면 '믿음'의 문제인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빨간색 장미는 싫고 하얀색 장미가 좋다는 것은 믿음 차원이기보다는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반면, "나는 그 정치인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가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잘 몰라서 그런거야"라고 할 때에는, 믿음이 작용한 경우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취향에 근거했든 믿음에 근거했든 그 결과로 파생되는 의사 결정 행위는 동일하다.

결국 무엇을 좋아하는 반면 그 다른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스스로 신뢰에 찬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취향과 믿음 가운데 의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요인은 무엇일까. 기존 여러 연구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취향의 영향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지만, 최근 믿음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 하나가 시선을 끈다.

이 연구는 하바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정치적 정체성을 띠고 있는 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 취향 차원에서는 별다른 상이점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상대방의 소속 정당에 따라 그에 대한 신뢰도에 차등을 둔다. 즉 특정 정당 소속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믿음이 신뢰도 평가라는 의사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다.

우선 첫 번째 실험에서 참여자들에게는 소속 정당과는 관련이 없는 연구임을 주지시킨 상태에서 각각 5달러씩을 줬다. 그리고 5달러를 연구에 참여한 다른 모르는 사람과 얼마씩 나누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소속 정당에 따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공화당원으로 확인된 참여자들은 5달러 중 3.72달러를 본인이 갖겠다는 답을 했고, 민주당원의 경우는 그 액수가 3.67달러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타심이라는 견지에서 보았을 때 소속 정당에 따른 취향적 상이점은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음 실험에서는, 참여자 A는 5달러를 본인이 갖고 다른 5달러를 참여자 B에게 건넬 수 있는 조건을 줬다. 아니면 그 결정을 A가 B에게 미룬 경우, B는 10 달러씩을 서로 받게 하거나 혼자서 14달러를 챙기고 A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권을 줬다. 여기서 게임 참여자들은 상대방의 소속 정당을 이미 인지한 상태였다.

실험 결과는 놀랍다. A로 참여한 민주당원의 63%는 B가 민주당원인 경우 그를 신뢰할 수 있다고 믿은 나머지 결정권을 B에게 기꺼이 넘긴다.

B가 공화당원인 경우 그 비율은 40%로 떨어진다. 반면 A가 공화당원인 경우는 B가 민주당원일 때 그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비율은 66%, B가 같은 공화당원일때 58%였다. 소속 정당에 무관하게, 민주당원이 이타적 견지에서 볼 때 더욱 신뢰할 만하다는 믿음을 보이는 경향성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

이 연구는 소속정당에 따른 '사람됨'을 평가하는 취지가 아니라, 취향이 아닌 믿음이 신뢰에 기초한 행동을 이끈다는 가설을 검증해보려 했던 것이다.

취향은 상호교류를 통해서는 바꾸기 힘들다. 반면 믿음은 설득·이해·공감이라는 상호간의 소통 행위를 통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극단적으로 정치적 의견이 나뉘고 있는 현실에서 되새겨 볼 만한 연구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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