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주 편집위원

가을의 한복판인 10월 중순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한다. 제주지역의 밭농사는 최근 들어 월동채소 재배면적이 늘면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기보다 한 겨울을 나야할 월동채소를 가꾸는데 일손이 바쁜 철이다.

이런 가운데 수확에 나서는 작목은 제주의 농작물중 제1소득원인 감귤이다. 지난 5일 극조생 감귤을 시작으로 노지감귤의 도매시장 출하가 시작된 만큼 말 그대로 제주는 감귤 철에 접어들었다.

제주도는 올해를 고품질 감귤 혁신 5개년 계획 시행 원년으로 삼았다.

감귤 혁신 5개년 계획은 정책, 생산, 유통·가공, 홍보·마케팅 4개 분야 73개 사업으로 구성됐다. 이 기간 총 투자규모만 5948억에 달한다.

주요 사업을 보면 감귤생산실명제, 감귤산업발전자문단 구성·운영, 품종갱신, 감귤 상품규격 5단계 적용, 가공용 감귤 출하 할당제 도입, 가공용 감귤 적정량 수매, 강제착색·비상품 감귤 도매시장 출하시 반품, 농·감협 계통출하 확대 등이다.

감귤 혁신 5개년 계획은 감귤산업의 발전을 위해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실천력이다. 당장 올해산 노지감귤 첫 출하부터 계획이 어긋나고 있다. 12일 현재까지 비상품 감귤을 유통시켰거나 보관하다 적발된 건수만 38건에 이르고 있다.

비상품 뿐 아니라 강제착색된 감귤이 얼마나 쉽게 유통되는지는 지난 6일 새벽 서울 가락동 농수산도매시장 현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올해산 노지감귤이 5일부터 출하돼 이날 첫 경매가 이뤄졌다. 감귤농가는 물론 행정기관, 생산자단체와 유통인 등의 이목이 집중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강제착색된 감귤이 발견된 것이다. 비상품은 아니나 저급품 감귤 15t 내외가 시장에 유통됐다.

올해산 노지감귤 경매 첫날 노출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제주도와 주요도매시장법인협회 등은 지난 2월 '비상품감귤 반송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협약은 실효성에 의문이 가고 있다. 반송요청을 할 경우 경매를 담당하는 도매시장 법인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해 사실상 반송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결국 이 협약은 보여주기 위한 것에 그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경매 첫날인데도 감귤 출하상황을 지도·감독하고 단속해야 할 공무원들이 현장에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감귤 위기론은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비상품 감귤 유통을 근절시키고 고품질 감귤을 생산해 유통하자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째 같은 구호가 반복되는 것은 아직도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농가나 유통인, 행정당국의 안일함에 있다. 감귤은 그동안 겨울철 과일시장에서 독과점을 누려왔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겨울철 우리나라의 대표과일에서 1위 자리를 시설딸기에 이미 내줄 정도로 시장에서 점차 외면 받고 있다. 특히 젊은층을 중심으로 아열대 과일을 선호하면서 수입과일이 늘며 감귤 1인당 소비량도 줄고 있다.

과일시장의 수요와 소비경향이 급속하게 달라지고 있는데도 제주도의 감귤은 제자리걸음이다.

사과·배·포도 등 국내 경쟁과일을 생산하는 농가들은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감산을 추진하고 고품질로 소비자 입맛을 맞추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 400만t의 감귤을 생산했으나 최근 80만t대까지 감산하고 고품질로 감귤산업을 발전시켰다. 제주도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현실에 안주하는 사이 제주감귤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다.

올해산 감귤 출하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행정이나 농가, 유통인 모두 당장 실천가능한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상품이나 저급품을 출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상품 감귤 유통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고 해서가 아니라 진정 제주감귤을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내놓기 위해서도 최소한 비상품은 유통시키지 말아야 한다.

행정당국도 출하초기 강력한 단속을 펼침으로써 비상품이 육지부로 반출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비상품 유통을 막기위해 별도의 단속반까지 꾸려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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