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논쟁부터 법정 공방까지 '뜨거운 감자'
고대사에서 근현대사로 쟁점 이동…"정치 도구화 문제"

역사 교과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역사 교과서는 끊임없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나 이념 편향성을 두고 격론의 대상이 됐고, 학문적 논의를 넘어 정치 쟁점화는 물론 법정에까지 가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 역사 교과서 논란, 언제 시작됐나
 
19일 학계에 따르면 역사 교과서는 처음 발간됐을 때부터 학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전 사회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당시 주로 쟁점이 된 부분은 고대사에 관한 서술이었다.
 
단군개국론을 신화로 해석한 국사 교과서가 만들어지자 재야학계는 일제 식민지 사관을 그대로 답습한 교과서라며 반발했다.
 
이 문제는 1978년 9월 29일 초대 문교부 장관을 역임한 안호상 당시 '국사찾기협의회' 회장이 8계 역사단체와 함께 서울고등법원에 국사 교과서의 내용 정정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함에 따라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또 1981년 8월 31일 '국사 교과서 내용 시정 요구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되면서 정치적 논쟁으로 확대됐다.
 
국회는 같은 해 11월 26∼27일 '국사 교과서 시정 공청회'를 열고 단군의 실존, 고조선의 영토, 백제의 중국 통치, 신라의 영토범위 등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당시 기사를 보면 안 회장은 "일제는 이른바 '동조동근'(일제가 조선을 동화시키려 만든 '일본과 조선의 조상은 하나'라는 이론)의 논리를 살리려고 단군조선 등 2천년을 잘라내고 위만 조선에서부터 우리 역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현행 교과서가 이를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사 교과서를 편찬한 국사편찬위원회 최영희 위원장은 "단군을 무시했다고 하나 중학교 교과서엔 우리 민족은 이 신화를 자랑스럽게 지니고 왔다는 표현을 썼다"고 반박했다.
 
교과서가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정부는 1986년 10월 20일 '국사교육심의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위원회 구성과 교과서 내용을 두고 정치권에서 상당수 위원에 대한 교체 요구가 거세게 제기됐고, 결국 일부 위원이 사퇴하는 등 적지 않은 파동이 일었다.
 
이듬해 6월 5일 위원회는 고조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라는 내용을 보강하고 기자조선의 실재를 부인하는 내용의 새 국사 교과서 편찬준거안을 확정·발표했다.
 
 
◇ 역사 교과서 쟁점 '고대사'→'근현대사'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역사 교과서 논쟁의 쟁점은 고대사에서 근현대사로 이동한다.
 
1997년 고시된 제7차 교육과정에 맞춰 2002년 검정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제작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부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가 제기됐다.
 
역대 정권은 실정을 부각하거나 공과를 함께 기술한 반면, 현 정부인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치적을 부각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회에서는 '역사 교과서 진상소위원회'가 구성됐고, 검정위원 10명이 일괄사퇴하는 등 교과서 문제가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반대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2008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교 사회 교과서 내용이 좌편향·반시장적이라는 지적을 받아들여 수정 지시를 내리고 집필자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2012년에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국사와 한국근현대사를 합친 '한국사'로 통합되고 검정으로 전환된 후에도 여당과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좌편향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던 중 2013년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교과서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진영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8종 모두에 대해 수정·보완 지시를 내렸다.
 
이처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수십년간 되풀이되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영호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교과서를 교육적 관점에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칠지에 중점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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