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늦가을 햇살이 가득한 따뜻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감귤작업에 나서서 대낮엔 거리가 텅 비어있다. 진료실을 멍하니 지키고 앉아있는 마음도 착찹하기 이를데가 없다.

저녁무렵 밭에 다녀온 차림이라고 흙묻은 신발을 미안해하며 병원문을 들어서는 할머니들의 긴 한숨에는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 주말 학회 참석차 서울에 갔었다. 학회 마친후 대형할인 매장에 들렸는데 그곳에 쌓여진 감귤과 그 가격에 깜짝 놀랐다. 제주산 감귤15㎏에 69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불과 얼마 전 만해도 하우스감귤이 ㎏당 3-4천원 했었는데, 노지감귤 15㎏에 그 가격이라니. 그리고 다른 생필품 가격들을 제주의 할인매장과 비교해보니 참으로 엄청난 차이였다.

예를 들면 4500원에 구입하던 볼펜이 3000원이었다. 물론 운반비가 포함된 가격이지만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것에 놀랬다. 그렇다면 제주감귤이 운반비를 포함해서 그 가격이라면 대체 생산자는 얼마를 받는다는 것인가?

생필품은 운반비를 포함해서 더 많은 가격에 공급을 받으면서 정작 공급해야할 감귤은 운반비를 물면서 손해를 보는 현실이라면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반면 감귤유통에 성공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인터넷 판매와 수출이다. 조천농협은 캐나다와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어느 정도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공동구매 사이트엔 품질에 자신있는 감귤은 높은 가격에 당당히 거래를 하고 있다. 다른 귤에 비해서 왜 가격이 높냐는 네티즌의 질문에 "어제는 1000㎏의 비상품 귤을 갈아엎었다. 품질에 자신 없으면 이런 가격을 부르지 못한다."는 한 감귤인의 글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그 부분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겪은 문제들을 짚어보고 싶다.

비상품은 내놓지 말고 좋은 상품만 선과해서 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므로 감귤값이 폭락한 것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가. 생산자의 비윤리성만 탓하기엔 너무도 폭락한 가격이지 않은가.

노지감귤이 생산될 무렵 올해 감귤은 산도가 낮고 당도가 좋다는 신문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가 사실이라면 품질에선 그리 큰 문제가 없을듯하다. 3년 연속 감귤값이 폭락하면 도에서 유통과정에 대한 대책도 마련했어야 하지 않는가.

도민의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국제자유도시 개발이란 명목으로 민심을 띄워놓지만 말고 지금 당장의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감귤농가의 한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모 칼럼리스트는 이 정부는 유치, 졸속, 업적주의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그 글에 찬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야당에선 감귤의 정부수매를 요구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그것 또한 선거용 민심잡기 아닌가. 그 민심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는 하는지 의문스럽다.

바라건대 오늘도 새벽부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감귤밭에서 차마 밭을 갈아엎진 못하고 눈물을 참으면서 일하는 도민들을 생각하고 남은 기간이라도 최선을 다해 정부수매가 더 이뤄지게 하고 판로를 개척해 줘야 할 것이다.

많은 피해를 입은 농가엔 저리의 대출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문제점들을 밝혀내어 대책을 마련하고, 판매 성공사례들을 모집하여 표본을 삼고, 보다 나은 제주감귤 만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윤민경·조천부부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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