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논설위원

알프스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라쇼드퐁'은 스위스에서도 기후와 환경이 척박한 산골 마을이었다.

1887년 10월6일 이 마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이름은 '샤를르 에드와르 잔네레'로 이 아이는 건축역사의 전무후무한 거장이 되며, 우리에게는 그의 필명인 '르 코르뷔제'로 더 알려져 있다.

'라쇼드퐁'의 주요 생산품은 시계문자판이었다. 코르뷔제의 아버지, 할아버지도 시계 문자판을 도안하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그도 가업을 위해 어릴적부터 소학교에서 시계도안을 배웠다.

재능이 많았던 코르뷔제를 지켜보던 그의 스승은 그가 시계도안가가 되는 것에 아쉬워했고, 그 스승은 그에게 건축을 할 것을 권유했다. 코르뷔제도 건축에 관심은 있었으나 그 마을에서는 건축도서 한 권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에 그는 당시 건축을 주도하던 오스트리아 빈 으로 배움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 1908년 파란만장한 건축가로서의 첫 발을 디딘 것이다.

코르뷔제는 유럽의 건축 거장들을 만나고 배우며, 자신만의 건축철학을 구축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의 나이 서른 다섯이 되던 1922년, 전 세계 그 누구도 내놓지 못했고 역사상 그 어떤 시대에도 나오지 않았던 '삼백만을 위한 도시'계획을 발표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이다.

삼백만을 위한 도시는 프랑스 파리를 위한 도시계획이었다. 당시 파리는 먼지와 매연으로 오염됐고, 가로는 침침했으며, 결핵과 빈민굴이 도시를 황폐화시키고 있었다.

도시로서의 기능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파리를 향해 그가 제시한 도시철학은 '일상생활의 회복'과 '자연의 회복'이었다.

시민들의 일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도와 역, 보행자 전용 가로, 교통속도가 다른 도로, 공항 등을 제시했고, 자연의 회복을 위해 집적화된 주거와 오피스 빌딩을 만들고 그 주위에 자연녹지와 공원 등을 조성할 것을 제시했다.

코르뷔제의 삼백만을 위한 도시가 나온 지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그의 도시철학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제주의 환경은 100년전 파리와 다르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땅값, 서울 강남 수준의 집값, 부동산값에 편승한 개발 광풍으로 제주는 오염중이다.

또 허둥대는 행정과 부동산 정책은 제주의 황폐화를 방관하고 있다. 정책과 행정은 그 무엇도 갈피를 못 잡고 있으며, 도민들도 땅값 상승에 그저 웃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 모습이다.

이제는 제주를 위한 도시철학과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뛰는 부동산의 안정화와 늘어나는 이주민을 위한 주택정책 수립이 절실하다. 더 늦기 전에 제주는 인구 '백만을 위한 도시'계획이 필요하다.

코르뷔제 같은 도시철학을 정립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상의 회복'이라는 도시철학하에 구도심의 주택 재생과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구도심 활성화와 이주민 주택공급을 안정화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제주는 지금 인구 백만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안과 당황한 모습이 여기저기에 역력하다. 준비되지 않은 백만은 제주를 황폐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된 백만은 제주를 빛나게 할 수 있다.

코르뷔제는 '삼백만을 위한 도시'를 더욱 발전시켜 '빛나는 도시'로 발표했다. 이제 우리도 '백만을 위한 제주'와 '빛나는 제주'를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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