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미술평론가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논설위원

올해로 27회를 맞는 이중섭미술상에 제주 출신 강요배 화백이 수상했다. 강요배의 수상은 다음해 '2016년 이중섭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제주에서 준비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각별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제주가 고향인 강요배는 대학시절과 한동안의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해 제주 특유의 풍경에 집착하고 있다.

강요배와 이중섭의 세속적 인연이라면 이중섭이 서귀포로 피난 와서 1년 남짓 체류할 무렵, 강요배는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전에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으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이중섭상을 통해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특정인의 이름을 내걸고 만들어진 상이란 그 예술가의 세계와 정신적 유대를 지닐 때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해마다 열리는 수상자의 발표를 보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중섭의 예술세계를 기리고 그 정신을 잇는다는 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우 말이다. 이 점에서 이번 강요배의 수상은 심사위원회에서 밝혔듯이 이중섭미술상에 적절한 대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가 이중섭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인 데다가 화백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제주의 작가에게 처음 주어진 상이란 점이 그렇다. 하지만 정작 의미를 더하는 것은 심사위원회가 원했던 미술상의 취지를 충족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정기준을 '화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치열한 작가 정신과 시대에 앞서가는 조형적 실험성이었다'는 언급은 참으로 공감되는 부분이다.

수상의 역사가 길어지다 보면 일관된 맥락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심사위원이 해마다 바뀌는 제도상에서도 애초의 취지를 제대로 살려가기는 무리일 것이다. 심사위원의 안목·미의식에 따라 일관된 합의를 이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중섭이 향토적 소재에 집착했다는 성향이나 드로잉적인 활달한 조형요소가 두드러진다고 해서 수상자를 이 범주에 국한한다면 수상의 범위는 극히 편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심사위원들이 밝힌 취지의 치열한 작가 정신과 시대에 앞서가는 조형적 실험성은 가장 적절한 함의를 이룬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중섭과 강요배는 제주라는 특정 공간에서 자기 예술을 살찌운 점에서 공통되는 점이 적지 않다. 이중섭의 연대기에 따르면 이곳에 피난을 와 체류한 약 1년은 그의 예술세계의 전환점이 된다는 점에서 주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그의 예술이 지닌 향토·민족적 서사에 비하면 제주시기를 중심으로 형성된 후반기의 그의 경향은 자전적, 인간적 면모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 이중섭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터이다. 가족과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어우러짐에서 지상의 낙원을 꿈꾸었던 이중섭의 염원이 선명히 표상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자유분방한 조형세계는 각박한 현실을 극복해가는 치열한 예술혼이 아니랄 수 없다.

강요배는 제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세계를 일관되게 다뤄오고 있다. 이곳의 풍물이나 풍경은 이미 적지 않은 화가들이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강요배만큼 이곳의 공기를, 바람을 시각화해준 예는 없다. 그에게 제주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가 된 총체적인 모습으로서의 그것이다. 제주 안에 그가 있고 그 안에 제주가 있는 경지로서 말이다.

'시각적 인상을 넘어 우주적 예감과 장 후한 시간에 대한 상념을 담아내고 있음'이란 심사평 역시 이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제주의 공기가, 제주의 바람이 실존으로서 다가온다. 이 실존은 유토피아를 꿈꿨던 이중섭의 염원과 어우러져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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